2박 3일간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한국 재계 총수들에게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방북한 인사들에 따르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방북 첫날인 18일 만찬에서 이 부회장을 김정은에게 인사시켰다. 김영철이 “삼성그룹 총수”라고 말하자 김정은은 “다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물론이고 삼성그룹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이 부회장과 별도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 등) 모든 북측 고위 간부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쏟는 관심 외에는 재계 총수들에게 제일 집중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20일 삼지연 초대소에서 열린 마지막 오찬에서도 이 부회장, 최 회장, 구 회장 등 재계 인사들과 일일이 ‘작별주’를 주고받았다. 김정은은 웃으면서 재계 총수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또 보자. 잘해 보자’는 식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이 방남하면 주요 대기업의 사업장을 방문하는 일정이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한 방북단 인사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먼저 이뤄져야 비로소 해외 투자도 이어질 테니 북측도 한국 재계 총수 등 기업 관계자들의 방북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며 “북한 주민에게 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 대기업 회장들이 왔다고 말하는 선전효과도 굉장할 것”이라고 했다.
방북단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없는 탓에 재계 총수들도 수첩과 펜을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 그들은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북측 관계자의 설명과 본인 감상 등을 수첩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재계 총수들은 북한 지도층을 만나며 외연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상징적인 기회라고 보면서도 실제 대북 사업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모습이다. 미국과 유엔의 이중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 또는 묘목 심기 수준의 사업만 가능하다는 한계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귀국 직후인 20일 밤 삼성전자 수뇌부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북한에서 느낀 소회 등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 출발 전까지도 이 부회장이 직접 가는 게 맞느냐 아니냐를 두고 왈가왈부가 이어졌다고 한다”며 “특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의 불참 사실이 전해진 뒤로 이 부회장의 방북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한 ‘방북 경험자’이자 ‘맏형’인 최태원 회장은 귀국 직후 대부분 총수들이 말을 아낀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협력 가능성에 대한 운을 띄웠다. 최 회장은 “아직 뭘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북한에서) 본 것을 토대로 길이 열리면 뭔가를 좀 더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SK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검토하겠지만 아직 특별한 그룹 차원의 액션은 없다”고 했다.
방북 수행단이 사실상 첫 총수 데뷔 자리가 된 구광모 회장도 21일 오전 지주사 관련 임원들과 회의를 열어 북한 방문에서 보고 들은 북한 경제 상황에 대해 직접 전달했다. 구 회장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여건 변화 등을 살피며 미래 가능성 차원에서 경제협력 방안을 검토해 나갈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최정우 회장도 21일 오전 방북 관련 회의를 열고 “철강, 석탄 분야에서 포스코뿐 아니라 업계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남북미 관계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경협이 재개되면 우리 그룹에 기회가 올 수 있게 내부 남북 경협 태스크포스(TF)를 잘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5월부터 이미 남북 경협 TF를 만들어 직접 진두지휘 중이다. 환경만 조성되면 국내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만들어 대북 사업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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