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어제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을 접견하고 만찬도 함께했다. 정의용 수석특사는 방북에 앞서 “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의 흐름을 살려 한반도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대통령의 확고한 뜻과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고 했다. 비핵화를 결단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은 김정은이 내놓은 반응은 오늘 귀환하는 특사단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김정은의 발언과 그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요동칠 것이다.
김정은은 우리 특사단을 이례적으로 환대했다. 특사단의 평양 도착 3시간 만에 이뤄진 접견과 만찬은 파격적 대접이라고 할 만하다. 김정은이 대남 특사로 보낸 여동생 김여정의 귀환 보고를 받고 “남측이 온갖 성의를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만족을 표시한 만큼 예상된 일이기도 하지만 과거 아버지 김정일이 특사와의 면담 여부를 놓고 애를 태우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북한은 지난주 우리 측의 특사 파견 통보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고, 특사단의 김정은 면담 요구에도 별다른 조건 없이 수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의전상의 환대가 향후 남북관계, 나아가 북한의 대외관계 전망을 밝게 하지는 않는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조문차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난 적 있지만 단순한 조문 응대에 불과했다. 우리 정부 당국자와의 만남은 집권 이후 처음이다. 북한은 평창 유화 공세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어제도 선전매체를 동원해 미국을 거칠게 비난하며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영원히 ‘깡패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사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김정은이 ‘평창 모멘텀’을 그냥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조만간 북-미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대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시늉에도 보상을 주는 식의 타협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부터 계속해오던, 대외 협박으로 양보를 받아내 생존을 연장하는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이달 말 평창 휴전기간이 끝날 때까지 접점이 안 나오면 북한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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