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평양에 도착한 대북특사단의 방북과 함께 ‘북핵 슈퍼위크’의 막이 올랐다. 지난달 강원 평창에서 시작된 대화 분위기는 평양으로 옮겨져 주말쯤 미국 워싱턴을 거쳐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석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행 특별기에 오르며 “북한과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와의 다양한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이목이 평양에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 평화 구축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한 문재인 정부는 흥행 면에선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방북 첫날 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만찬까지 하면서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랐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우는 ‘중매외교’가 빛을 발하려면 북-미 양측이 만족할 만한 여건에서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 ‘무조건 비핵화 대화’를 고수하는 미국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또는 연기나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북한 사이에서 한국이 접점을 얻어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특사단이 미국보다 더 강하게 비핵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북-미 대화를 견인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사가 일단 확인된 다음에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며 “핵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가 우리 아닌가? 북한이 비핵화 얘기를 못 꺼내게 하면 (특사단이) 빈손으로 돌아올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계속 내놓는 게 우리로선 나쁘진 않다. 정 수석특사가 ‘미국에 가서 설명해야 하는데 당신들이 묘안을 내놓지 않으면 할 말이 없다’고 말할 각오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북한에 비핵화 대화를 촉구한 것은 정부의 스탠스를 엿볼 수 있다. 강 장관은 이날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세계기자대회’ 오찬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ID)는 타협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이 같은 발언으로 비핵화만큼은 한미가 물샐틈없이 공조하고 있으니 김정은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미국은 일단 대북 특사단 행보를 관망하는 모습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나서주는 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협상이 자칫 어그러지거나 북한이 도발하면 책임을 북한에 돌리고 압박하기에도 좋다”고 전했다. 미국은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내세워도 대화의 진짜 목적은 결국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제재 완화라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숨통을 조인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하고 싶은 미국을 설득해 북한과 적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서울대 교수는 “특사단의 방북 이후 방미 기간 사이 정치적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핵 슈퍼위크의 파장은 한반도 주변국에도 고루 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 안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도 추진하고 있다. 5일 중국 외교부는 특사단 방북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반면 일본은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완전하게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핵·미사일 폐기를 한다고 동의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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