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별사절단은 5일 평양에 도착한 지 약 2시간 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김정은 면담은 이번 방북단의 성패를 가를 최소 기준으로 꼽혀 왔던 만큼 첫 관문은 넘어선 셈. 특사단은 이날 만찬까지 함께하는 등 12시간가량 북한에 머물며 남북, 북-미 관계 해법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을 단번에 뚫어낼 묘책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강조했다고 성명까지 내서 밝혔지만, 북한 외무성은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구축의 첫 공정이라며 여전히 평행선을 그었다.》
○ 김정은, 특사단 곧바로 만나며 만찬 대접했지만…
특사단은 이날 오전 7시 40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공군 2호기를 타고 평양으로 떠났다. 비행기에 오르는 특사단 5명 중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오른손에는 갈색 가방이 들려 있었다. 문 대통령의 친서가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다.
정 실장은 비행기를 타기 전 “잘 다녀오겠다”는 간단한 인사말만 남겼다. 6개월 전 방북길에 “한반도 비핵화와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뜻과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고 결의에 찬 입장을 발표한 것과는 달라진 풍경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석 달 동안 꼬일 대로 꼬인 북-미 비핵화 대화를 풀어내야 하는 중압감이 그만큼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에 도착한 시간은 1시간 20분가량이 지난 오전 9시. 공항에는 지난달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판문점선언 이행 지연을 지적하며 남측 대표단을 위협하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통일전선부 관계자들이 영접에 나섰다. 특사단은 오전 9시 33분경 평양 고려호텔에 도착한 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선권 등과 환담을 나눴다. 20분가량이 지난 뒤 김영철이 먼저 다음 회담을 준비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특사단은 ‘고위인사’와의 면담을 위해 10시 22분부터 장소를 옮겼다.
특사단이 첫 공식 일정으로 만난 인물은 김정은. 문 대통령의 친서와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고 평양을 찾은 특사단이 도착 2시간도 안 돼 김정은을 만난 셈이다.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면담 장소는 올 3월 1차 특사 방북 때 만났던 노동당 국무청사 진달래관이었다. 회담을 마친 뒤 특사단은 북한 고위 인사들과 오찬을 가졌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김정은은 오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 北 “종전선언 안 하면 비핵화 불가능”
특사단은 만찬을 마치고 오후 9시 50분 서울공항으로 돌아왔다. 정 실장은 남북 정상회담 일정 합의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청와대로 돌아가 문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했다.
김정은은 만찬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를 공개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6개월 전 평양을 찾은 특사단에 핵·미사일 도발 중지 의사를 밝히며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조기 종전선언을 주장하고 있는 북한과 종전선언에 앞서 핵시설 리스트 신고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는 미국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비핵화 대화의 판을 흔들기 위한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사단은 김정은에게 북-미 대화가 다시 선순환으로 돌아서기 위해선 최소한의 사전 신뢰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통해 핵시설 신고서 제출과 종전선언 논의를 재개한 뒤 9월 말 한미 정상회담을 거쳐 2차 북-미 정상회담, 남북미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 채택을 추진하자는 구상이다.
특사단은 또 리선권 김영철 등과 잇따라 만나 남북 정상회담과 개성 연락사무소 개소 일정은 물론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남북 경제협력 방안 등도 폭넓게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비관론이 더 많다. 북한은 특사단 방북 하루 전인 4일 외무성 김용국 군축평화연구소장 명의의 글에서 “종전선언을 채택하는 것은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의 첫 공정”이라고 했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채택해야 비핵화 조치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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