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중 정상회담]中 기업유치 量보다 質로… 하이테크 투자가 답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7일 03시 00분


한중 동반성장의 모델 ‘뉴 차이나 솔루션’
삼성 반도체 공장 진출한 시안市 가보니… “경제구조 고도화 기여” 삼성전담팀 두고 원스톱 행정지원

삼성, 古都 시안에 젊음의 새바람 중국 산시 성 시안 시 가오신(하이테크) 공업개발구 안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차세대 10나노급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현장. 140만 ㎡의 공장용지에 크레인 30대와 인력 6000명이 동원돼 작업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안=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삼성, 古都 시안에 젊음의 새바람 중국 산시 성 시안 시 가오신(하이테크) 공업개발구 안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차세대 10나노급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현장. 140만 ㎡의 공장용지에 크레인 30대와 인력 6000명이 동원돼 작업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안=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20일 오후 중국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 시 가오신(高新·하이테크) 공업개발구. 지난해 9월 착공식 이후 9개월 만에 다시 찾은 삼성전자의 ‘차세대 10나노급 낸드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은 크레인의 숲이었다.

공장과 부속건물 20개 동(棟)을 동시에 짓는 이 공사엔 현재 하루 6000명이 투입된다. 다음 달엔 인력이 1만2000명까지 늘어난다. 30대의 대형 크레인 사이로 레미콘 트럭, 철골 구조물을 실은 대형 트럭이 꼬리를 물고 오갔다. 현재 공정은 35% 수준. 김석희 삼성전자 건설담당 차장은 “예정대로 착착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개혁개방 30여 년 이래 외자(外資)기업 투자로는 최대인 이 프로젝트를 위해 산시 성 정부도 초스피드로 움직인다. 현장 인근에는 5.6km 길이의 고속도로 ‘삼성전자 쾌속 간다오(干道·간선도로)’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성 정부는 삼성전자 공장의 공항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항 고속도로까지 곧바로 닿을 수 있는 이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뿐 아니다. 착공식을 앞두고는 이곳에 살던 7개 촌의 4473가구, 1만여 명을 이주시켰다. 공단 조성 공사도 순식간에 마쳤다.

중국 언론들은 “개혁개방의 흐름을 놓쳐 우수한 인적자원을 대거 보유하고도 성장이 정체되는 ‘산시 현상’은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산시 속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성 정부는 공업개발구 내에 삼성전자 전담팀을 두고 모든 일을 원스톱으로 처리해 준다.

이번 투자를 두고 중국 언론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산시만보는 “산시의 급격한 변화 발전과 경제구조 고도화에 강력한 충격파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인터넷판 런민왕(網) 등은 “삼성은 고루한 옛 도시 시안에 정보화의 청춘을 불러왔다”, “작디작은 칩에서 개혁개방의 풍성한 성과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삼성의 투자로 시안이 한중 협력의 상징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학에는 한국어 교육 열풍이 일고, 유학생 등 1000명에 불과했던 시안 거주 한국인은 1년 만에 갑절인 2000명으로 늘었다. 전재원 시안총영사는 “이곳은 친한(親韓) 분위기로 뜨겁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모든 기업이 이렇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2011년 이후 파나소닉, 포드, 캐터필러, 애플 등 세계적 기업들이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하거나 생산 품목을 줄였다. 중국의 최저임금이 최근 3년 사이 17∼38% 오르는 등 비용 증가가 심각한 경영난을 가져온 탓이다. 동부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줬던 각종 혜택도 사라졌다. 국내 기업들 가운데에서도 중국을 저임금 생산기지로 삼았던 중소기업, 중국의 고속성장에 기대 호황을 누린 기계업체 등이 타격을 받았다.

▼ 中진출 전략 ‘메이드 인 차이나’서 ‘메이드 포 차이나’로 ▼

KOTRA 칭다오(靑島)무역관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산둥(山東) 성 지역에 등록한 한국 기업 약 1만 개 중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2000개 안팎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 후반 칭다오에 진출한 한 의류업체는 2008년 근로자가 500명까지 늘었지만 철수를 준비하는 지금은 130명만 남겼다. 김주철 KOTRA 칭다오무역관 차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2, 3년도 버티기 힘들다는 기업인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일부 자동차 부품회사나 정보기술(IT) 업종을 빼면 모두 어렵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과거와 같은 계산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것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의 시안 반도체 투자 사례는 반도체나 첨단 디스플레이 정도의 고(高)부가가치 산업이 아니고서는 중국과 ‘윈윈’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뉴 차이나 솔루션’ 찾아 나선 기업들

중국에 진출한 국내 대표기업들은 이처럼 양(量)에서 질(質)로 중심축을 옮기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뉴 차이나’ 시대를 맞아 ‘뉴 차이나 솔루션(해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뉴 차이나 시대 기업들은 더는 중국을 미국, 유럽 수출을 위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의 생산기지만으로 활용할 수 없다. 중국 내수시장을 위한 ‘메이드 포 차이나’를 내놓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주력 분야도 저임금을 활용한 조립 가공에서 고부가가치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성공 경험을 몇 년 뒤 이식하는 사업모델로는 중국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국 내 생산능력 확대에 주력해 온 현대자동차그룹은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확보라는 ‘질적 성장’으로 눈을 돌렸다. 현대차 중국경영연구소의 류기천 부소장은 “과거에는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모델을 1, 2년 뒤 중국에 출시했지만 이제 처음부터 중국을 겨냥한 전략제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특히 중국 중서부 내륙지역에 주목하고 있다. 설영흥 현대·기아차 중국사업총괄 부회장은 “성장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중서부 내륙을 중심으로 제4공장 후보 지역을 고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는 중서부 내륙인 충칭(重慶) 시에 타이어 공장을 짓고 있다. LG디스플레이도 최첨단 공정인 8세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공장을 광저우(廣州)에 짓기로 했다. SK그룹은 SK차이나 대표를 아예 중국인인 쑨쯔창(孫子强) 씨에게 맡겼다.

○ 노하우 앞세운 유통·서비스업 진출

사업 분야를 제조업에서 금융, 유통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도 과제다. 박래정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부품 등 중간재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너무 높아 중국의 수출 감소에 따른 타격이 크다”며 “향후 10년 중국 특수(特需)를 지켜내려면 최종 소비재와 유통 및 서비스업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점에서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하림은 지난해 초부터 중국 장쑤(江蘇) 성 옌청(鹽城)에 기반을 둔 국영기업 웨다그룹의 요청으로 이 그룹에 닭 사육부터 가공, 유통 전반에 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아직 중국에서는 닭고기를 대규모로 생산, 가공, 유통할 만한 시설이 없어 대중화되지 않은 닭고기 제품이 고가에 유통되고 있다. 중국 시장 진출을 틈틈이 시도해 왔지만 어려움을 겪었던 하림엔 좋은 기회였다.

중국 지린은행 지분을 인수한 하나금융지주도 주목받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하나금융은 지린(吉林) 성 정부가 최대주주인 지린은행 지분 인수로 송금, 대출 등 은행 영업망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과도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와 관습이 비슷한 중국 동북3성 지역 진출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할 방침이다. 삼성화재도 국내 손해보험업계 처음으로 자동차 책임보험 판매에 나서며 금융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10년 넘게 런민일보의 서울 특파원을 지내며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지켜본 쉬바오캉(徐寶康) 전 대기자는 “삼성과 같은 한국 대표 기업은 경제성장을 통해 강대국을 만들겠다는 중국 지도자들의 ‘중국의 꿈(中國夢)’에 해법을 제시했다”며 “이렇게 상호협력을 유지하는 게 동반성장의 길”이라고 말했다.

시안=이헌진 특파원·김용석·염희진 기자 mungchii@donga.com
#한중정상회담#삼성#뉴차이나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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