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무역과 금융, 산업기술, 거시정책 등 경제의 각 분야에서 협력관계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은 우선 2015년까지 무역액 3000억 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높은 수준’으로 체결하기로 합의했고, 기존에 체결돼 있던 통화스와프 시한도 3년 더 연기했다. 이 밖에 선진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 외부 경제위험에 공동 대처하기로 하고, 기존의 무역투자 중심에서 기술 및 에너지 분야로 협력관계를 확장하는 등 구체적이고 시의 적절한 내용들에 다수 합의를 이뤘다. 이 같은 손에 잡히는 성과만 놓고 보면 적어도 경제협력 측면에서는 5월 한미 정상회담 때보다도 더 내실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한중 FTA 탄력 받을 듯
이번 회담에서 양국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한중 FTA 체결에 대한 서로의 강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데 있다. 지난해 5월 1차 협상을 시작으로 1년 넘게 진행돼 온 한중 FTA 협상은 현재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양국은 1단계로 협상 분야별 지침을 정하는 ‘모댈리티(modality) 협상’을 한 뒤 2단계로 협정 문안과 양허 협상을 본격 진행하기로 했지만, 아직 1단계 합의도 마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이날 한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모댈리티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평가하고, 한중 FTA 협상팀이 협상을 조속히 다음 단계로 진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국은 1단계 합의에 속도를 낸 뒤 2단계로 넘어가 상품의 품목별 개방 수준을 정하는 협상을 본격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양국 정상이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FTA 체결을 목표로 한다고 밝힘에 따라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의 관세 폐지 비율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FTA 협상에서 ‘높은 수준’은 ‘10년 내 관세를 폐지하는 비율이 전체 품목의 90% 이상’이라는 뜻으로, 정부는 한미 FTA와 한-유럽연합(EU) FTA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개방을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중 FTA가 체결되면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3.04% 늘어나 소비자 후생이 365억8000만 달러(약 41조93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재계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한중 FTA가 조속히 체결되기를 기다려 왔다”며 “큰 틀에서 의지를 확인한 만큼 실무 차원의 논의도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통화스와프 2017년까지 연장
양국 정상은 또 두 나라 간 체결돼 있던 통화스와프 계약의 만기일을 3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2011년 10월 64조 원(3600억 위안)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2014년 10월을 만기로 체결했는데 이를 2017년 10월까지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아직 만기가 1년 4개월가량 남았지만 만기 연장을 미리 확정해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또 기존 3년 단위로 통화스와프의 만기가 연장되던 것을 5년, 7년 등 더 긴 기간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규모도 필요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다음 달 초 만기가 돌아오는 30억 달러 상당의 한일 통화스와프는 종료하기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추구하는 경제협력의 무게중심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 창조경제 분야 협력도 강화
이날 양국이 경제협력 방향을 첨단기술, 정보통신, 에너지, 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한 것은 수출 중심의 고속성장 정책을 접고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한다는 중국의 새로운 정책 방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각 성(省)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에 대한 혜택을 줄이고 최저임금을 최대 30% 올리는 등 외자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고(高)부가가치 산업 분야의 협력 파트너에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서부 내륙지역인 시안(西安)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고, 현대자동차도 중국 제4공장의 후보지로 서부 내륙지역을 적극 검토 중이다.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중국 내륙지방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중국공업정보화부 간 장관급 대화를 정례화한 것은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기술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시분할(TDD) 방식의 롱텀에볼루션(LTE) 기술을 새로운 통신 표준으로 정하는 등 미국, 유럽과 다른 독자적인 표준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정부 간 협력을 통해 중국의 표준기술을 선점한다면 중국 내 통신설비와 스마트폰 판매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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