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자금 단서도 조사前 당사자에 통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일 03시 00분


황당한 FIU법 개정안

금융위원회 산하 기관인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비자금 조성이나 해외 탈세를 위한 것으로 의심되는 수상쩍은 고액 현금 거래(하루 1000만 원 이상)를 발견해 검찰이나 국세청에 알려줬을 경우 이를 해당자에게도 10일 이내에 통보해 주도록 하는 법 개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비자금 조성이나 역외 탈세에 대한 수사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추징당할 돈을 숨기거나 재벌들이 비자금 조성, 역외 탈세 등을 하기 위해 고액 현금을 움직였을 경우 FIU는 그 같은 사실을 수사 당국에 통보한 뒤 당사자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역외 탈세나 비자금 조성 수사는 의심 가는 거래 사실을 포착해 내사에 들어가는 단계에서부터 확인하는 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사 초기에 당사자가 이를 알고 대비하면 수사나 징세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6월 30일 법무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2월 민주당 박영선 강기정 의원 등이 금융거래정보가 수사기관과 세무 당국에 무분별하게 제공되는 것을 막자는 등의 취지로 발의했다. FIU가 검찰과 국세청에 고액 현금 거래 사실을 통보한 뒤 이를 당사자에게 통보하는 조항(7조의2)과 FIU 안에 검찰 국세청 통보 여부와 대상을 결정하는 정보분석심의회를 두는 조항(7조 8, 9항)이 핵심이다.

개정안 7조의2에 따르면 FIU는 검찰과 국세청 등에 고액 현금 거래 정보를 넘긴 날부터 10일 안에 해당 계좌 명의자에게 그 사실을 문서로 통보해야 한다.

FIU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을 비롯해 FIU를 운용하는 160여 개 국가 중 고액 현금 거래 추적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려주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 당사자 알고 대비땐 비자금-탈세 수사 차질 ▼

수사기관과 국세청이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당사자가 공개적인 거래를 피하거나 사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중견 검사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야 할 범죄 수사와 세무조사의 핵심 단서를 범죄자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총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 당사자 통보를 6개월간 유예할 수 있는 규정도 뒀지만 비자금 및 역외 탈세 수사나 불법 정치자금 수사엔 통상 1년 안팎의 내사가 필요하며, 거래 사실만 통보받은 내사 초기에 당사자 통보 유예가 불가피한 사안인지를 검찰총장이 일일이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개정안 7조 8, 9항에 따라 FIU 안에 정보분석심의회가 신설될 경우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위헌 논란을 낳고 있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기관도 영장 없이 볼 수 없는 정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기관 관계자나 정치인이 보게 한다는 건 헌법이 보호하는 중요한 개인정보를 유출되도록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수사와 관련한 정보의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FIU 관계자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 FIU에도 그런 기구가 없다”고 밝혔다.

FIU는 예외적으로 법원의 영장 없이도 계좌 거래 명세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관이다. 검찰 등 수사기관은 계좌추적을 하려면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한다. FIU가 검찰 등에 넘겨주는 것은 내사의 기초 자료가 될 고액 현금 거래 개별 명세이다. 개개인의 상세한 거래 흐름을 추적하는 수사 당국의 계좌추적과는 다르다. FIU는 시중 금융기관에서 비자금 조성 및 역외 탈세 수사, 세무조사 등의 실마리가 되는 거래 정보를 모아 수사기관과 세무 당국에 통보한다. 현재 진행 중인 CJ 비자금 수사도 FIU가 지난해 CJ그룹이 관련된 수십억 원의 수상한 거래 명세를 발견해 검찰에 알려준 게 한 계기가 됐다.

전지성·장선희 기자 verso@donga.com
#비자금#FIU법#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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