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4대강, 대운하 염두 두고 진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1일 03시 00분


靑 “사실일 땐 MB정부 국민 속인 것”
■ 사업계약 실태-담합의혹 감사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 중단 이후에도 운하 재추진을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추진했다고 감사원이 10일 밝혔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감사원 감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서 4대강 감사 문제로 신구 정권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 감사원, “운하 재추진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 진행”

감사원은 올 1∼3월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4대강 사업 담합 의혹과 입찰 부조리를 집중 점검했다. 감사원이 이날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주요 계약 집행 실태’에 따르면, 2009년 2월 국토부(당시 국토해양부)는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라 운하가 재추진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대통령실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후 운하를 재추진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4대강 사업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국토부가 운하 재추진을 염두에 뒀다는 근거로 △2008년 4월 4대강 사업의 당초 계획에 비해 준설과 보의 설치 규모가 확대된 점 △최소 수심(6.0m)과 사업구간(한강 하구∼경북 상주) 등이 대운하 안(案·최소 수심 6.1m)과 유사하게 결정된 점 등을 들었다.

또 감사원은 “국토부가 대운하 중단 이후에도 대운하 안의 반영 여부를 검토하고 경쟁을 제한하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경부운하 컨소시엄을 유지한 채 손쉽게 담합을 저지를 수 있게끔 담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특히 건설사들의 담합 정황이 포착됐음에도 국토부는 별다른 제재 없이 2011년 말까지 준공을 맞추기 위해 사업비 4조1000억 원 규모의 1차 턴키공사를 한꺼번에 발주해 담합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것. 공정위가 건설업체들의 담합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유 없이 1년 이상 처리를 지연하고, 담합을 주도한 회사의 과징금을 깎아 준 사실도 적발됐다.

○ 청와대 “국민 속인 것”

감사원의 4대강 계약 집행 실태 조사 결과 발표가 나온 뒤 이 수석이 춘추관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일이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며 비판했다. 이 수석이 실명으로 공식 의견을 낸 건 아주 이례적인 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사실상 대운하 재추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4대강 건설을 계획했다면 이는 ‘국민 기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정책의 진행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정부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는 ‘정부 3.0’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감사 결과를 보면 국민을 속여 대운하 건설을 준비하고 계약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방조했다는 것 아니냐”며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대운하 사업에 강하게 반대해 온 박 대통령의 4대강에 대한 불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 때 “4대강에 대한 여러 지적이 있었는데 장마철에 안전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주기 바란다”며 “4대강으로 인한 피해로 물값이 인상된다는 얘기도 있는데 각 부처는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린 후 실시 여부를 결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강한 비판에는 전임 정부와 선을 긋겠다는 의지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4대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향후 부작용의 책임을 미리 끊겠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원전 부품 비리 사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에 이어 4대강 비리까지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임 정부 때의 일이 논란이 되고 있다”며 “대책은 현 정부가 마련하더라도 책임 소재는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불쾌한 MB 측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내부에선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 전 대통령 측의 한 관계자는 “양건 감사원장이 현 정부에 충성 맹세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이런 결과를 내놓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운하 사업을 검토만 했을 뿐 집행은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전임 대통령을 비판한 건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다른 관계자도 “태국 물 관리 사업 계약이 아직 마무리도 안 된 상황인데 찬물을 끼얹는 처사로 국익에 저해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동정민·손영일·문병기 기자 ditto@donga.com
#4대강#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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