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만으론 안돼… 성과를!” 깐깐한 지시에 장관-수석 진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일 03시 00분


[박근혜 리더십]<下> ‘만기친람’ 스타일

박근혜 대통령은 온갖 정사(政事)를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 리더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5개월간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쏟아낸 12만198자를 분석하면 모든 정책에 다 관여하기보다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핵심 정책의 방향과 이행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반복적으로 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가 분석한 결과 ①정책 마련의 화두 제시→②정책 발표 예고와 준비 상황 점검→③정책 발표에 대한 평가와 의미 부여→④사후 정책 이행 점검 지시의 4단계 패턴으로 박 대통령의 정책 챙기기 스타일을 유형화할 수 있었다.

○ 회의 때 말고도 전화로 반복 지시

이런 패턴의 대표적인 사례가 주요 공약인 정부 3.0(정부 내 공유와 협업시스템) 구축이다. 박 대통령은 5개월간 26차례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협업’이라는 단어를 54회나 언급했다. 회의마다 평균 두 번씩 강조한 셈이다.

우선 1단계. 대통령은 3월 18일 첫 수석비서관회의부터 “부처 이기주의를 없애고 태스크포스(TF)팀 등 협의 기구를 따로 만들라. 협업을 위해 부처에 대한 평가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며 정책 방향의 화두를 제시했다. 그 뒤로도 3, 4월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효율적 협업을 위한 방향을 내놨다.

5월부터는 정부 3.0 선포를 예고했다(2단계). 그러면서 “선포하기에 앞서 각 부처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부처마다 어디까지 어떻게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 제시하라”고 지시했다(5월 14일 국무회의).

수차례 박 대통령의 지시와 독려 끝에 6월 19일 안전행정부가 ‘정부 3.0 선포식’에서 협업 비전을 내놓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박 대통령은 그 다음 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6월 24일)에서 “정부 3.0의 핵심은 단순한 정보 공유가 아니라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 사회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3단계).

이게 끝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같은 회의에서 정부 3.0의 성공을 위한 사후 정책 이행 방향까지 제시한다(4단계). 대통령의 지시 내용 치곤 무척 실무적이다. “맞춤형 정보 제공을 위해 정보 검색과 파일호환 표준화 등의 기술적 문제를 잘 점검하고. 자료의 공익성 신뢰성이 제일 중요하니 담당 부서와 담당자의 실명제 도입을 검토하길 바랍니다.”

6월 25일 국무회의에선 “정부 3.0 목표의 핵심인 정확한 통계와 자료의 인프라 구축”을 주문했다. 그러자 감사원이 7월 ‘통계자료 등의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천억 원의 세금이 증발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핵심 과제인 고용률 70% 달성도 이처럼 반복적인 지시 패턴을 거쳐 정책이 발표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회의 이외에도 매일 수석비서관, 비서관, 장관들에게 전화 등을 통해 이행 상황을 점검, 확인하고 진척이 더딘 부분에 대해서는 분발을 독려한다”고 전했다.

○ “노력했다는 말로 안 통해, 성과는 장관 책임”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이 모든 정부 정책을 일일이 지시하거나 정책에 관여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부처별로 10개의 정책이 있으면 대통령이 이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핵심 정책 한두 개에 집중해 반드시 이행하도록 반복 주문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용률 70% 달성이나 복지 경제성장 등 거시적 과제 이외에도 박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며 직접 지시하는 정책에는 부처 장관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문화관광산업이 한 예다. 한국적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관광산업 활성화를 강조해 온 박 대통령은 6월 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관광정책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주먹구구로 하면 안 된다. 나라별 수요를 조사해 과학적으로 검토하라”고 경고성 주문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 달여 뒤인 7월 17일 박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 1만2000명의 외국인 관광객, 1800명의 외국인 소비자, 251개 해외 현지여행사를 상대로 관광 수요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지시의 이행이 마뜩지 않으면 회의와 같은 공개석상에서도 질타하기 때문에 수석비서관들과 장관들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5, 6월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점검과 사고 대책을 여러 차례 주문했다. 6월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선 “관계 부처에서 책임지고 청와대 수석실도 우선순위를 정해 점검 또 점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자 7월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성재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을 공개적으로 혼냈다.

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 집요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정책 이행상황을 챙길까. 그 이유도 회의 발언에 잘 나타난다.

박 대통령은 3월 2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백방으로 열심히 했다고 해서만은 안 되고 5년 뒤에 국민의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유념하라. 이것은 장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5월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선 “노력했는데 안 됐다는 말은 안 통한다.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약속과 신뢰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으로선 정책성과가 나타나는지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정책의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기 때문에 수석비서관들과 장관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꼼꼼한 정책 챙기기에 참모와 부처들이 난감함을 표시할 때도 있다. 박 대통령이 국사 교육을 강조하며 대입 평가 기준에 넣으면 좋겠다는 방향을 제시하자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과 교육부는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대입 제도의 변화, 사교육 문제 등 국사를 대입 평가 기준에 반영할 경우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고용 창출 성과를 공무원 평가에 반영하라고 지시했지만 실제 평가할 기준을 찾기가 어려워 실무진이 고민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와 격주 화요일에 열리는 국무회의 이외에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북 대화 제의, 윤창중 씨 사건에 대한 사과, 라오스 탈북자 북송,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문제 등에 대한 입장 표명이 모두 이들 회의에서 나왔다. 정해진 시간에 열리는 회의를 이용해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다 보니 타이밍이 늦을 때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완준·동정민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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