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해 非타협” 朴정부의 배수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3시 00분


철도파업 경찰투입 이후 ‘최악 勞-政’… 朴대통령 “적당히 넘기면 미래 없어”
민노총, 정권퇴진 투쟁으로 확전… 한노총도 “모든 노사정 대화 불참”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된 다음 날 정부는 ‘예외 없는 법과 원칙의 적용’ 방침을 다시 강조했다. 노동계는 정권 퇴진 추진과 노사정 대화 불참으로 맞서며 확전에 나섰다. 매서운 겨울 추위보다 더 냉랭한 대립 구도 속에 ‘동투(冬鬪)’가 예고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며 철도노조 파업 사태와 관련해 원칙을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불편하고 힘들지만 이 시기를 잘 참고 넘기면 오히려 경제사회의 지속 발전이 가능한 기반을 다지게 될 것”이라며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모든 문제를 국민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국민 혈세로 메우고 있는 코레일 적자를 줄이기 위한 경영 합리화를 노조가 막고 있는 것”이라며 “기득권 노조에 굴복할 수 없으며 코레일에 대한 혁신 작업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총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전체 조합원의 분노를 담아 정권 퇴진을 위해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경향신문사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는 3000여 명이 참가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오후 긴급 회원조합대표자회의를 열어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등 모든 노사정 대화 불참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활동을 중단한 것은 2009년 12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문제 때 이후 4년 만이다.

한국노총은 또 문진국 위원장 등 집행부를 중심으로 가급적 많은 조합원이 28일 열리는 민노총 총파업 집회에 동참하기로 했다. 문 위원장은 “한국 노동 역사 전체를 돌아봐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노사정위 완전 탈퇴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로써 노사정위는 당분간 이름뿐인 기구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18일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임금체계 개선,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일·가정 양립, 장시간 근로 단축 등 현안에 대한 논의도 모두 멈추게 됐다. 고용률 70% 정책을 위한 노사 협력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불똥 어디로 튈까… 경영계 긴장 ▼
경제 5단체 “정부, 엄정 대처를” 성명


당분간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당장 민노총은 28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벌인다. 정부는 토요일이라 산업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으며, 그 후에도 개별 사업장의 참여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노총의 경우 내년 1월 22일 차기 집행부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강경 분위기가 수그러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사태의 원인인 철도노조 파업이 해결되지 않는 한 노정갈등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도파업의 해결 전망은 어둡다. 공권력 투입이라는 ‘최종 카드’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부 검거가 무산되면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안팎에서는 파업이 해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코레일 관계자는 “경찰의 민노총 진입 이후 이미 협상의 ‘공’이 우리 손을 떠났다”며 “단순히 철도 노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에 맞서는 민노총 및 범야권의 정치 공세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파업 초기부터 시작된 협상 카드 부재(不在)의 문제는 파업이 길어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번 파업의 단초였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파업 이틀째였던 10일 이미 이사회 의결이 끝났다. 노조 측은 여전히 “수서발 KTX 자회사를 원점에서 논의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코레일 측은 “이미 파업 초기부터 서로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고 말한다. 노조 역시 처음에는 ‘철도 민영화’ 논란으로 파업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민노총에까지 경찰이 진입함에 따라 스스로 파업 철회를 하기도 애매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노조는 파업 집행부가 체포되는 상황을 대비해 ‘예비 내각’ 형태의 제2지도부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통상 지금까지의 철도파업은 당국의 불법화 규정 후 노조 집행부 체포로 마무리되곤 했다”며 “이번 파업에서는 양측이 내놓을 협상 선택지가 없고 감정 다툼이 워낙 심해 집행부가 체포된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전체 경영계도 초비상이다. 정부가 강성노조의 불법행위에 원칙대로 대응한 것은 지지하지만 노정관계 악화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5단체는 23일 성명을 통해 “정부와 코레일이 수차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철도 민영화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는데도 철도노조는 아무 근거도 없이 수서발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민노총은 철도노조의 불법 투쟁을 전국적인 대(對)정부 투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총파업 지침을 내리는 등 불법투쟁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며 “정부와 각 기업은 이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등 엄정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는 노정관계 악화가 내년도 기업활동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 노사 간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번 공권력 투입이 노동계의 큰 반발을 불러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갈등 해결 전문가들은 △정부는 원칙을 지키되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의 문까지 닫아서는 안 되며 △정치권과 언론은 KTX 자회사 설립을 둘러싼 민영화 논쟁 등 이념적으로 해석이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정파적인 접근을 지양하고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용갑 한국갈등관리조정연구소 소장은 “실패가 이어지더라도 계속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호 starsky@donga.com·동정민·박창규 기자
#철도파업#박근혜#민노총#공권력 투입#한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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