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민노총 업고 강경 투쟁하다 여론에 밀려 ‘백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철도파업 철회/시작부터 종료까지]

“이번 철도파업에 명분은 없습니다. 2, 3일 안에 종료될 겁니다.” 철도파업이 시작된 9일 국토교통부 당국자가 한 말이다. 이는 국토부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측이 모두 공유하던 인식이었다.

이런 판단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수서발 KTX의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방식의 민영화를 추진했던 것과 달리 박근혜 정부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에 이 일을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자회사 설립은 진정한 의미의 경쟁체제 도입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정부 안팎에서 나올 정도로 공공성을 높인 만큼 노조 파업이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명분이 없다’던 이번 파업은 30일 여야 정치권이 중재에 나설 때까지 22일간 계속되며 사상 최장의 철도 파업으로 기록됐다.

○ ‘민영화 프레임’에 갇혔던 정부

철도노조는 처음부터 파업의 명분으로 ‘철도요금 급등을 불러올 민영화 반대’를 내세웠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10일 코레일 이사회가 수서발 KTX 설립을 의결하자 “이제 코레일은 순차적으로 분할되고 분리된 자회사들은 언제든 매각될 것”이라며 “철도노조가 철도의 공공성을 지켜내겠다”고 선언했다.

초기엔 여론도 노조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인터넷에서는 “철도 민영화가 되면 서울∼부산 KTX 요금이 6만 원에서 28만 원까지 오른다”는 ‘괴담’이 나돌았다. 13일 노동당 당원인 주현우 씨(27·고려대 경영학과)가 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2장짜리 대자보가 고려대에 나붙자 민영화 반대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 ‘원칙 대응’ 지켜낸 정부

파업 초기 ‘민영화 프레임’에 갇혀 우왕좌왕하던 정부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에 방향을 잡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철도노조의 이번 파업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명분 없는 집단행동”이라며 “코레일 자회사는 철도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며 공공자본을 통해 설립되는 만큼 민영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자동 승진, 전보 거부 등 ‘철도 독점’ 시스템 속에서 노조가 누려온 각종 특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론은 빠르게 노조에 불리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에 힘을 얻은 정부는 22일 사상 처음으로 철도노조 집행부가 은신한 민주노총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노조 집행부 체포에는 실패했지만 철도노조원들 사이에는 “파업을 계속해도 정부의 강경 방침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결국 30일 사실상 파업 종료를 선언했다.

정부는 예정대로 철도부문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수서발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 자회사인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는 코레일 이외에 철도사업 면허를 받은 첫 번째 회사다. 2016년 개통하는 이 회사는 서울 수서역에서 부산역 및 목포역까지 운행한다. 국토부는 수서발 KTX 운임을 현행 서울역발 KTX보다 평균 10% 할인하겠다고 밝혔다.

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철도노조#민노총#철도파업#철도 민영화#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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