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자 공기업 노조는 정부가 공기업에 빚을 떠넘긴 뒤 책임을 미룬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개혁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공기업 노조를 정조준했다. 박 대통령의 정공법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공기업의 천문학적 부채가 정부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12일 본보가 단독 입수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 9곳의 금융 부채 증가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정부 정책이나 요금 통제 등 외부요인으로 인해 늘어난 빚은 60조527억 원이었다. 하지만 무분별하고 방만한 국내외 사업 등 내부요인으로 인해 늘어난 빚도 46조2020억 원에 달했다. 106조2547억 원 가운데 외부요인 비율은 57%, 내부요인 비율은 43%인 것이다.
박 대통령이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은 어려움에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공공부문에서 방만 경영을 유지하려고 저항한다면 국민에게 그 실태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내부요인을 철저히 규명해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주문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2007년부터 6년간 공기업 9곳의 금융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LH와 한전, 한국철도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수자원공사(수공) 등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 2012년 LH의 영업이익은 1조4085억 원이었다. 하지만 그해 이자 비용만 4조4881억 원으로 영업이익의 3배가 넘었다.
▼ LH 무리한 자체사업 19조 빚더미 ▼ 감사원 “빚 증가 정부 탓 못해”… 원인별 책임 소재 분명히 하기로
감사원이 이들 공기업 9곳의 금융 부채를 원인별로 따져봤더니 정부 시책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얻은 빚이 42조9769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대표적인 곳이 수공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과 경인 아라뱃길 사업을 추진하며 금융 부채가 8조5525억 원 늘었다. 박 대통령이 10일 “과거 무리하게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정책사업과 전시행정을 추진하면서 부채를 떠안게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금융 부채를 늘린 두 번째 원인은 공기업들이 자체 사업을 방만하게 벌인 결과였다. LH가 자체 사업을 벌여 6년간 늘어난 금융 부채만 19조5905억 원이었다. 이어 한전 5조9326억 원, 가스공사 5조771억 원, 한국도로공사 1조8589억 원, 수공 1조2828억 원 순이었다. 석유공사는 해외사업을 무분별하게 벌이다 6년간 금융 부채가 8조7542억 원 늘었다. 가스공사와 한전도 방만한 해외사업 탓에 빚이 각각 1조9603억 원, 1조4472억 원 증가했다.
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의 늘어난 빚은 100% 내부요인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 탓을 할 수 없는 공기업들이다. 가스공사도 정부의 요금 통제정책에 따라 늘어난 빚(5조7525억 원)보다 국내외 사업을 벌이다 늘어난 빚(7조374억 원)이 더 많았다. 한전이나 LH도 내부요인에 따른 빚 증가가 각각 48%, 40%에 달해 정부 탓만을 하기 힘든 곳으로 꼽혔다.
감사원이 공기업 부채의 원인별 감사에 나서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말 LH, 한전, 수공 등 7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구분회계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부채의 원인을 따져 회계에 반영토록 함으로써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기업의 잘잘못을 분명하게 구분한 뒤 투명하게 공개해야 정부나 공기업이 무리한 사업을 추진할 수 없고, 공공요금 현실화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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