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불통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자신의 소통 방식으로 현장 방문, 각계각층 간담회, 청와대 민원 해소 등을 예로 들었다. 대통령의 ‘불통’ 논란은 자신만의 독특한 소통법에서 시작된 셈이다.》
2012년 8월 중순. 대통령선거일을 넉 달 앞두고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와 캠프 인사 31명 전원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한 인사가 박 대통령을 향해 “주변에서 불통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인식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경선 때 오픈프라이머리 논란 이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저처럼 국민과 많이 소통하는 정치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픈프라이머리는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인사가 “그(오픈프라이머리) 논란 이전에도 불통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물러서지 않아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해졌다.
박 대통령은 ‘불통’ 논란이 2012년 새누리당 경선 때부터 나온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당시 이재오 정몽준 김문수 등 ‘비박(非朴)’ 후보 3인방은 경선 룰을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로 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친이(친이명박)계가 주축이 돼서 만든 경선 룰을 이제 와서 자기네들이 불리하다고 바꾸는 건 원칙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며 협상 테이블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불통’ 지적을 ‘떼쓰기에 적당히 타협하라’는 부당한 요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유독 ‘불통’이라는 단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인식을 잘 아는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지난해 12월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말했다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과 전화를 자주 한다. 밤이 늦거나 주말에도 궁금한 사안이 생기면 직접 전화를 건다. 장관이나 수석들도 필요에 따라 대통령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하지만,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은 주로 부속실을 거친다. 때로는 박 대통령이 관저로 장관이나 수석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은 관저에 자주 드나드는 이들이다. 참모들과 일대일로 소통하고, 그룹 회의를 즐기지 않는 것이 박 대통령 소통법의 핵심이다.
2008년부터 2011년 초까지 박 대통령은 평의원 시절, 각종 정책 스터디를 할 때 토론을 많이 했다. 이한구 안종범 강석훈 의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등과 함께 스터디를 하면서 해당 주제에 맞는 전문가를 초빙해 격의 없이 질의응답을 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정책에 들어가는 재원과 그 부작용까지 분야별로 모든 의문점이 풀릴 때까지 토론과 문답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후 당 대선후보를 거쳐 대통령에 오르고는 그 같은 격의 없는 그룹 토론은 거의 사라졌다.
대선 경선 때 박 대통령이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한 이후 과거사의 늪에 빠져 있을 때다. 한 측근이 대통령에게 “참모 핵심들과 이 분야 전문가와 함께 모여서 5·16 군사정변에 대해 끝장 토론을 벌인 뒤 이 논란을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단박에 거절했다.
2012년 10~11월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위기론이 퍼질 때에도 한 참모는 “안대희 김성주 황우여 정몽준 한광옥 등 선거대책위원장급들과 함께 모여 토론을 통해 주요 사안을 결정해 속도를 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도자로서의 결벽증
박 대통령이 토론을 즐기지 않다보니 종종 허점이 드러난다. 여러 명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면 이야기하는 과정에 서로의 생각이 보완, 발전되고 여러 부작용을 미리 찾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박 대통령이 여러 통로로 의견을 수렴한다고는 하지만, 일방적인 의견 개진인 경우가 많아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서 “두 개의 판결이 있다”거나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 때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 헌납 과정에 대해 원고패소 판결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는 등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던 것은 그런 허점의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혼자 일일이 여러 명과 접촉하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평시에는 상관이 없지만 위기에 빠지면 이를 극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통령이 토론을 하게 되면 참모들끼리 미리 말을 맞춰 대통령이 잘못 간 방향을 바로잡도록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일대일로 상대하기 때문에 참모들이 설득하기가 몇 배로 힘들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왜 집단 토론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걸까. 무엇보다 어린 시절 청와대에서 아버지를 바라본 경험에 따라 지도자로서 일종의 결벽증이 있다는 게 주변의 분석이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와 같은 리더는 흐트러지거나 정제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토론을 하게 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형태의 말을 던지게 된다. 자연스레 본인의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남들이 알게 된다. 박 대통령은 본인의 메시지가 확정되면 혼선 없이 이 메시지가 아래로 정확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 메시지가 확정되는 과정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A4 두 장 넘기지 말라’
박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에도 사전에 미리 현안을 다 파악하고 회의에 들어간다. 회의에서 수석실별로 보고를 하면 다른 수석들이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해당 보고에 대해 대통령이 코멘트를 하는 식으로 회의가 진행된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이 올리는 보고서는 끝까지 다 읽는 편이다. 참모들이 보고를 하러 들어가면 말을 자르지 않고 보고가 끝날 때까지 충분히 듣는다. 다만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들면 보고하는 부분이 아닌, 뒷부분을 읽고 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참모들에게 보고서의 분량을 A4 두 장 이상 넘기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양은 줄었지만 꼼꼼히 챙기는 편이라 건수는 많아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그러나 일반 정치인과는 소통 방식이 다르다. 여성 정치인의 특성상 밤에 폭탄주로 친목을 다지지 않는다. 계파 정치에 대한 불신도 크다. 여야 정치인이 카메라가 있으면 싸우다가 뒤에서 악수하고 웃는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강하다. 이렇다보니 정서적으로 스스럼없이 정치인과 소통하는 데는 약점이 있다. 이른바 정치권에서 흔히 말하는 ‘동지’ 의식은 깊지 않은 편이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때 함께했던 측근 정치인들을 관저로 불러 술을 마시면서 본인의 고충도 말하고 시중 여론도 듣는 일을 즐겨 했다. 박 대통령도 몇 번 최측근 대선 인사들을 관저로 불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횟수는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로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과거 대통령들은 생일이나 행사 때 전화를 걸어 인사치례로 면을 세워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이벤트에 약한 편이다. 그 때문에 마음 상한 원로 정치인도 많다.
‘본분’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은 여당이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지난해 11월 시정연설 때 “여야가 합의해 오면 국민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본인이 야당 대표를 해봤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왜 자꾸 국회 일에 나를 끌어들이려 하냐”면서 답답함을 호소할 때가 많다고 한다. 참모들 중에도 대통령만 쳐다보고 지침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최경환, 윤상현 의원처럼 ‘행동파’로 일을 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지난해 9월 3자회동은 본인의 뜻을 접고 여당 지도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사례다. 지난해 말 철도파업에 대해 김무성 의원이 여야 합의안을 가져왔을 때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국회의 행태가 자신이 판단하기에 국민이 바라는 길과 반대로 간다고 여길 때는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걸 여야 타협으로 해결하자”는 정치인의 소통법과는 괴리가 있다. 특히 야당에 대해서도 과거처럼 하나 받고 하나 주는 식의 딜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명분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크다. 자연스레 정무수석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것 말고는 재량권이 거의 없다.
“너무 쇼 같다”
박 대통령은 어느 정치인보다 자신이 많은 국민을 만났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2004년 당 대표 시절부터 수십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유세 현장을 다녔고 국민을 직접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들었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고 본인마저 테러로 목숨이 위험했던 파란만장한 박 대통령의 삶을 아는 장년층은 대통령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 ‘애잔함’을 느낀다.
박 대통령의 최대 장점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자세다. 대통령에 오른 후에도 수첩을 들고 다니며 자신에게 하는 건의를 모두 적는다. 대통령의 모든 행사에는 민원비서관이나 직원이 빠짐없이 동행한다. 해외 순방 때도 민원비서관이 늘 동행한다. 이들은 민원이력카드를 만들어 이 건의의 진행 상황과 결과를 대통령에게 반드시 보고한다. 대통령은 초등학생들이 보내는 카드까지 꼼꼼히 살펴본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때 자신의 소통 방식으로 민원에 대한 애정을 장시간 설명했다. 고(故)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에 오는 모든 편지를 다 읽어보고 일일이 답장을 써 보내거나 현장을 방문한 모습 등이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집무실이나 관저에서 직접 컴퓨터로 인터넷 뉴스를 즐겨 보고 댓글도 읽어본다고 한다. 대통령이 인터넷 뉴스로 소식을 먼저 듣고 참모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기도 한다. 박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유머도 주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 후보 때는 KBS ‘개그콘서트’를 종종 즐겨 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 나름대로 젊은층과 코드를 맞춘 것이다. 대선 때는 한 토크 콘서트에 개그콘서트에 나왔던 ‘브라우니’ 인형을 끌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 각 수석실은 매일 아침 조간 모니터링을 꼼꼼하게 한다. 박 대통령이 수석들에게 언제 전화를 걸어 물어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모르던 정책의 문제점이 언론에 보도되면 수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신문의 이 지적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사실이면 수정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말한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각 부처가 고용률 70% 숫자에 집착한다는 지적, 중앙일보의 문화재 관리 비리 지적 등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회의 시간에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 서울 삼성동 자택에 있을 때는 특정 종합일간지와 영자 신문 몇 개만 구독했다. 그러나 청와대에는 집무실과 관저에 모든 신문이 들어오기 때문에 신문 접촉면이 크게 늘었다. 박 대통령은 시간이 날 때마다 신문을 꼼꼼히 본다고 한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를 선정하면서 종합일간지 2년치를 모두 살펴보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스크랩했다.
지난 대선 때 참모들은 삼성동 자택에 들어가기 전 집 앞에 있는 삼성동 코엑스몰을 예고 없이 깜짝 방문해 젊은이들과 아이스크림도 먹고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너무 쇼 같아 보인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청와대 내부 분석 결과 박 대통령이 지난해 수행한 다양한 일정 중 언론에 많이 보도된 것 중 하나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시구였다. 박 대통령이 운동복을 입고 나와 경호원에게 둘러싸이지 않은 채 심판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을 던지는 장면은 우리 곁에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느끼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대통령의 소통법은 ‘청와대 경험이 몸에 밴 여성 정치인’의 인생역정을 통해 쌓인 것이다. 국민을 중심에 놓고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한다는 진정성은 있지만, 스킨십을 바탕으로 한 편안한 소통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신뢰할 수 있으면서도 소통 능력이 뛰어난 유능한 참모를 주변에 포진해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년기자회견에서 소통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박 대통령이 자신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바꿀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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