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재난사고가 터질 때마다 “상황 대처 매뉴얼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작 정부가 보유한 각종 안전 및 위기관리 매뉴얼을 다 합치면 모두 32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연재해나 화재, 산업재해, 교통안전 등을 담당하는 기관마다 사태 수습용으로 임기응변식 매뉴얼을 내놓는 게 관행으로 굳어진 탓이다. 매뉴얼이 중구난방인 데다 워낙 방대해 담당 공무원들이 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현장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안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매뉴얼 너무 많아 안 보게 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범부처 사고대책본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에서 만든 안전 관련 매뉴얼은 개수로만 따지면 3200여 개나 되고 워낙 여기저기서 만들다 보니 내용의 80%가 겹치는 실정”이라며 “내용도 딱딱하고 어려워 비전문가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내 안전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A 사무관은 “매뉴얼이 한두 개로 정리돼 있으면 반복해서 숙지할 텐데 챙겨야 할 매뉴얼이 수십 개에 달해 제대로 들여다볼 엄두가 안 난다”고 털어놓았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은 매뉴얼을 최대한 쉽고 단순하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적재난과 자연재해를 구분하지 않고 통합 관리하는 ‘전재해 접근법(All Hazard Approach)’을 채택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여러 분야의 안전 담당자들이 원활하게 협업하려면 공통된 기준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 컨트롤타워 없이 대책본부만 10개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없이 우후죽순으로 사고대책본부를 만들어 공무원을 적재적소에 투입하지 못하는 비효율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이번 진도 여객선 참사와 관련해 범부처 사고대책본부, 안전행정부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물론이고 해양경찰청 교육부 국방부 등을 포함해 10개 가까운 대책본부가 만들어졌다. 각 부처 장차관을 비롯해 대책본부에 투입된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만 245명에 달한다.
정부는 이런 대규모 대책본부를 만들고도 사망자 현황 및 구조 상황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계속 혼선을 빚어 유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침몰한 선박 승객들의 생존 여부가 판가름 나는 사고 초기 ‘골든타임’ 때도 이렇다 할 리더십을 보이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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