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주제, 하지만 정작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어 ‘논쟁적’이지는 못한 주제가 바로 여야가 논의하고 있는 새로운 선거제인 ‘50%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여야 4당이 큰 틀에선 합의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사활을 걸고 반대하고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찬성을 하고 싶어도, 반대를 하고 싶어도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마음을 정하기도 어렵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컴퓨터를 칠 때 내부 부품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고 비유했을 정도로 복잡한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안, 그중에서도 핵심인 ‘비례대표제’는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바뀐 것인지 낱낱이 뜯어봤다.
○ 비례대표 ‘산식(算式)’ 뜯어보기
이번 50%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내가 가진 두 개의 표(지역구 투표, 정당 투표)가 지금처럼 독립적으로 계산되지 않고, 서로 연동된다는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현행대로 이뤄진다. 의석수가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어든다는 점만 달라진다.
문제는 75석으로 늘어난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다. 정당별 득표율을 기준으로 총 두 단계 계산을 거쳐야 한다. 1단계에서는 전국 단위로, 2단계에서는 권역별 단위로 계산한다.
제도 도입 초기에 썼던 ‘전국구 의원’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 지금까지 비례대표제도는 총 비례대표 의석수를 전국단위 정당득표율로 단순하게 나눴다. 이번에는 전국을 서울·경기인천·대전세종충청강원·광주호남제주·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 6개 권역으로 나눴다.
1단계는 우선 비례대표 의석 총 75석을 각 정당별로 배분한다. 우선 전체 의석수인 300석을 각 정당의 득표율로 나눈다. 예를 들어 A정당이 40%를 얻었다면 A정당이 300석의 40%인 120석을 가져야 국민에 뜻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다. 이럴 경우 A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110석 건졌다면 나머지 10석을 비례대표로 보정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에서는 연동비율을 50%로 낮췄다. 즉, 10석의 절반인 5석만 ‘지역구 의석수’를 보정하는 차원의 연동의석으로 가져가는 것. 지지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수가 적은 군소정당들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전체 75석에서 각 정당들의 ‘연동의석’ 총합을 빼고 남는 의석수는 현행처럼 정당득표율로 단순계산해서 나눠가진다.
2단계는 이렇게 확보한 의석을 권역별로 다시 나누는 단계다. 지역구 110석 비례대표 19석을 확보한 A정당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1권역인 서울에서의 정당득표율이 30%일 경우, A정당은 총 확보한 129석 중 적어도 30%인 38.7석, 반올림해서 39석을 이 권역의 몫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1권역에서 당선된 지역구 국회의원은 이보다 많은 40명일 경우 이미 정당득표율 이상의 당선자를 지역구에서 충분히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1권역의 연동의석은 0이 된다. 다른 권역의 연동의석도 같은 방법으로 각각 계산한다.
○ 비례의석,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이렇게 확보한 의석수를 어떤 순서로 누구에게 나눌 지다. 정당들이 ‘비례대표 명부’를 작성하는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비례대표 의원 수를 늘릴수록 문제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이 만든 비례대표 명부에서 1번 후보자부터 순서대로 위에서부터 당선자를 자른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표를 통해 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개개인에게 지지를 표명하거나 후보들의 순서를 바꿀 수 없다. 유권자들은 특정 정당 자체에 표를 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법 개정안에 반기를 들고 있는 한국당은 “내 표가 어디 갔는지 추적이 되지 않는 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정당의 공천 절차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만 규정된 현행 공직선거법 47조 2항을 구체화했다. 특히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은 대의원·당원과 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구체적 내용도 당헌·당규 등으로 정해 선거일 1년 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다.
석패율제도 처음으로 도입한다. 문자 그대로 ‘아깝게 떨어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제도다. 각 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석패한 후보자를 최대 두 명까지 비례대표 후보자로 당선시킬 수 있다. 이번 개정안에선 지역구 의석이 줄어들기 때문에 통폐합대상이 되는 지역의 반발을 “2등도 당선될 수 있다”는 논리로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다. 석패율제로 당선되는 의원이 생기는 지역구에서는 사실상 한 지역구에서 정당이 다른 두 명의 의원이 당선되는 셈이다.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서 반영한다면 21대 총선에서의 각 정당별 비례대표 명부는 6개 권역별로 한 개씩, 총 6개 명단이 만들어진다. 비례대표 투표용지 자체가 현행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1번을 포함해 홀수 번째 순위 후보자는 지금처럼 여성 후보자에게 할당한다. 석패율제를 적용하는 정당은 짝수 번째 순위에서 최대 두 개를 골라 석패율제를 적용할 지역구 후보자들의 이름을 올린다.
○ 공정성·투명성 확보가 핵심
여전히 여러 가지 이슈는 남는다. 가장 논쟁적인 점 중 하나는 ‘표의 등가(等價)성’ 문제다. 유권자가 정당에 던지는 표는 똑같이 하나인데 지지하는 정당과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표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전국에서 300만 표를 받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합쳐 20석을 확보한 어떤 정당을 예로 들어보자. 1권역과 2권역에서 얻은 표가 똑같이 전체득표수의 20%인 60만 표이지만, 지역구 의석수는 1권역에서 4석이 당선됐고 2권역에서는 모든 후보자가 탈락했다면 두 지역의 표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1권역에서는 20석에 권역득표율 20%를 곱하면 4석이므로 추가로 배정할 연동의석이 없지만, 2권역에는 지역구 당선자가 없으므로 4석에 연동비율 50%를 곱한 2석을 연동의석으로 부여하기 때문이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비례대표 명부에 투표한 득표율이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한 정당에는 배분되지 않고 지역구 의석을 적게 차지한 정당에만 비례대표 의석이 배분된다”며 “평등선거 원칙에 위반되는 위헌적 제도”라고 비판한다. 반면 정의당 김용신 정책위의장은 “비례대표 의석만 가지고 세자는 게 아니다”라며 “전체 의석수를 비슷하게 만들어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등가성을 맞춘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각 당의 비례대표 명부 작성이 공정한 룰에 의해 이뤄질지도 문제다. 정개특위가 만든 선거법 개정안에서는 비례대표 공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각 당이 상세한 공천 절차를 정해 중앙선관위에 1년 전에 제출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각 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21대 총선 1년 전인 다음 달까지 공천룰을 선관위에 제출하게 하는 조항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공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음선필 홍익대 법대 학장은 “비례대표의석수를 늘린 것이 정당 지도부의 공천권을 더 강화하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며 “정당이 명부를 작성하면 유권자가 순위를 바꿀 수 있는 가변(可變)명부식 제도를 전향적으로 도입하면 유권자의 정치적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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