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버스’의 진실]“빚내서 가는 버스 ‘망국行’밖에 없다”

  • 동아닷컴
  • 입력 2014년 3월 28일 15시 49분


김문수 경기도지사 인터뷰

김문수 경기도지사(사진)는 무상버스 논란에 대해 “무상급식보다 더 강력한 ‘공짜 바이러스’ 폭탄”이라며 “빚을 내 파티를 계속할 순 있지만 그 결과는 안 봐도 빤하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2009년부터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과 무상급식 예산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었던 인물. 그는 “표는 자기(김 전 교육감)가 받고 부담은 경기도와 일선 시군에 전가하는 것은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무상버스는 무상급식보다 그 규모나 운영 면에서 차원이 다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무상버스 공약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무상급식으로 (김 전 교육감이)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효과를 보지 않았나.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상버스 공약은 무상급식보다 더 강력한 공짜 바이러스 폭탄이 될 거다. 돈도 돈이지만 정신이 더 문제다. 우리 사회 전체가 공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라가 어려워진다. 버스 운영체제에 대해 논의하는 건 언제든 환영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공짜’부터 얘기하는 건 문제다.”

우리 사회 ‘공짜 바이러스 폭탄’ 우려

▼ 공짜 바이러스?


“무상이 보편화하면 가장 큰 문제는 ‘세금을 안 내도 복지를 더 받지 않겠나’ 하는 잘못된 인식이 계속 퍼진다는 점이다.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공짜 바이러스를 계속 퍼뜨리고 선전, 선동하는 것은 망국적 행동이다.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하게 협동하면서 미래를 위해 덜 쓰고 덜 먹고 저축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게 국민경제의 핵심 원리다. 그런데 이런 것은 안 하고 공짜 버스 타고 공짜 밥 먹으면서 돈을 안 내도 아무 일 없을 것처럼 책임 없이 말하고 다닌다? 이런 사람은 망국으로 이끄는 지도자다. 지난해 경기도 재정이 잠시 어려운 적이 있었는데, 주변에서는 지방채를 발행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살림을 줄이더라도 빚을 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지금 저출산시대에 빚을 내면 후손에게 짐을 안기는 거다. 지도자는 정신이 중요하다.”

▼ 지도자 정신은 뭔가.


“국민에게 ‘오늘은 힘들지만 내일을 위해, 내가 힘들지만 이웃을 위해, 개인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리자’고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 아닌가.”

▼ 무상버스 공약은 재정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건가. 김 전 교육감은 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경기도 예산을 원점에서 살피고 법정 필수경비를 제외한 예산을 조정해 마련한다고 했다.

“현재 경기도 내 버스회사의 연간 운영비만 1조6000억 원 정도 된다. 그런데 올해 경기도 가용재원이 4798억 원이다. 경기도에서 무상버스를 실현하려면 기존 버스노선 매입비, 시설 및 차고지 매입비 등 4조~5조 원을 투입해야 하고, 매년 운영비로 1조6000억 원이 소요된다. 무상버스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공짜 바이러스다. 단순 계산해도 경기도 가용재원의 3배가 넘는 예산이 든다. 아니 몇십 배가 될지도 모르겠다. 무상급식 혜택을 받는 학생은 도내 약 140만 명이고, 버스를 타는 사람은 하루 515만 명이 넘는다. 학교는 토요일, 공휴일, 방학 때는 쉬지만 버스는 매일 운행해야 한다. 학교처럼 방학도 없다.”

▼ 김 전 교육감의 단계적 무상버스 로드맵을 어떻게 평가하나.


“당초 알려진 보편적 무상버스 방안에서 많이 후퇴했다. 한마디로 소외계층,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건데, 이것은 무상버스라고 보기 어렵다. 언론이나 여권은 물론이고 야당 내부에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니겠나. 재원이 가장 많이 드는 마지막 단계의 소요예산, 재원 조달 방안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수도권 출퇴근 시간대 버스 교통상황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월 말까지만 해도 도지사 출마를 결심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공약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을 거다.”

▼ 무상급식에 반대해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아이 굶기는 도지사’라는 비판도 듣지 않았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표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이 ‘무상’에 반대하는 게 어려울 듯한데.


“힘들다. 경기도의회 3분의 2가 야당이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선거에서 공짜에 반대하면 인기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런데 빚내서 파티만 계속할 수는 없지 않나. 그것도 지도자가. 나는 무상급식 전부터 ‘무한돌봄’을 비롯한 저소득층과 소외계층 지원 사업을 진행해 5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대상을 받았다. 굳이 ‘무상’ ‘무상’ 하고 큰 소리 안 쳐도 충분히 복지정책을 잘 펼칠 수 있다.”

규제 완화와 권한 이양 시급

▼ 그래서 공약실명책임제를 선거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나.


“여러 번 제안했다. 예를 들어 공짜 버스라 하면 거기에 드는 예산이 얼마인지,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지를 선거관리위원회가 요구하고, 당선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고 책임을 못 지면 소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약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선거법에 넣으면 된다. 무상급식을 도입할 때처럼 표는 자기(김 전 교육감)가 받고 그 부담은 시장, 군수, 도지사에게 떠맡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김 전 교육감도 오늘(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시장, 군수 후보들도 무상버스 공약을 함께 내라고 제안한 걸 보니 또 떠맡기려는 속셈 아닌가.”

▼ 도지사를 하면서 수도권 규제 완화를 계속 주장했다. 최근 경기도지사 후보들도 규제 완화 공약을 내걸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규제 개혁을 직접 챙기고 나섰는데.


“박 대통령은 잘하고 있다고 본다. 규제 완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공무원부터 사회단체까지 반대가 정말 많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1970년대에도 규제 완화를 외쳤는데 아직도 규제 완화를 외친다고 말할까.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데, 이번 기회에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과감하게 했으면 한다. 청와대에서 회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규제 현장을 찾아 실상을 파악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 규제 완화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는데.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서도 여실히 느꼈다. AI 감염 여부는 간이검사로 1차 판단한 뒤 2차로 최종 확진 판결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간이검사는 도에서 하고, 확진 판결은 중앙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만 하게 돼 있다. 그래서 확진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사이 많은 닭을 살처분해야 한다. 지난번 구제역 파동 때도 이런 일이 발생해 도에서 시설을 갖춰 확진 판결을 할 수 있게 했다. AI 확진 판결도 이렇게 하면 될 줄 알았다. 수의사도 확보했고 시설과 장비도 갖췄지만, 중앙이 독점하고 내주지 않으니 소용없었다. 그린벨트 규제, 상수원 규제, 군사 규제, 농지 규제 등 중복되고 비합리적인 규제가 너무 많다. 지역 사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제일 잘 안다.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4년 3월 26일자 9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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