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3시 서울 은평구 은평로에 자리한 ‘전라북도 원조 욕쟁이 영양탕’ 식당. 70m² 남짓한 가게 안에는 구수한 보신탕 냄새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때였지만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 건 ‘욕쟁이 할머니’로 불리는 창업주 이경재 씨(83)의 아들 정홍갑 씨(59). 어머니는 전북 군산시와 서울 종로구에서 40여 년간 가게를 운영하다 아들에게 물려줬고 4년 전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열었다.
정 씨의 보신탕집은 명절을 제외한 연중무휴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6월 4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날에는 문을 닫는다. 식당이 선거 투표소로 바뀌기 때문이다. 정 씨는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지인이 ‘기존 투표소 위치에 대한 불만 민원이 많은데 하루만 식당을 쓸 수 있느냐’고 부탁해 승낙했다. 공적인 일인데 당연히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특급호텔도 ‘투표소 후보’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응암1동 주민들은 근처 알로이시오 초등학교와 도티 기념병원에서 투표를 했다. 그러나 투표소가 고지대에 있다 보니 노인과 장애인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이에 응암1동 주민센터 측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쉽게 찾을 수 있고 대로변에 있어 접근성도 좋은 정 씨의 식당을 새로운 투표소로 선정했다. 응암1동 주민 황병희 씨(57·여)는 “투표하러 동네 꼭대기까지 오르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식당이 투표소라니 부담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 각 읍면동 선거관리위원회는 기존 투표소를 점검하고 새로운 투표소를 확정하는 일로 분주하다. 대개 학교나 관공서가 1순위 장소로 꼽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으면 정 씨의 식당처럼 개인 소유 공간도 이용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지하 주차장, 예식장 등 이색 장소가 대거 포함돼 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자동차 틴팅(선팅) 전문업체와 중랑구 묵1동의 한 예식장도 이번 선거 때 투표소로 탈바꿈한다. 서대문구 홍제2동 인왕산 자락의 현대아파트 주민들은 몇 년째 아파트 입구 지하주차장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같은 구 홍은동에서는 적당한 투표소 찾기가 쉽지 않자 특급호텔인 ‘그랜드힐튼호텔’ 측과 협의를 하고 있다.
○ 투표소 선정, 갈수록 ‘첩첩산중’
투표율을 높여야 하는 선관위 입장에서는 투표소 선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섭외는 쉽지 않다. 개인 소유지를 섭외할 때 투표소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최대 사흘은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대 대선 당시 투표소로 사용된 은평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사무실 짐을 옮기고 정리하는 데 사흘이 넘게 걸렸다. 올해 선거에는 장소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부 자치구 주민센터는 야외에 임시 투표소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서울 은평구 갈현1동 주민센터는 18대 대선까지 건물 2, 4층을 투표소로 활용했으나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아 약 500만 원을 들여 주민센터 앞 주차장에 야외 투표소를 꾸밀 예정이다. 김영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언론팀장은 “소중한 투표권을 반드시 행사할 수 있도록 투표소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불가피하게 투표소가 변경되면 사전에 충분히 안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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