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부활한 지방선거가 20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成年)을 맞았지만 이번 6·4지방선거는 그동안 쌓아온 지방자치제의 자율성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많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라고는 하지만 지방선거의 핵심이 돼야 할 지방정부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박근혜 정부 구하기냐, 심판이냐를 놓고 여야 간 정쟁만 번득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올해 초 여권은 지방정부를 개조해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그림을 그렸다. 현역 단체장이 많은 야권을 비판하겠다는 선거 전략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지방정부로까지 확대하고자 하는 포부도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재정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자치단체에 대해 중앙정부가 개입해 강도 높은 재정개혁을 진행하는 파산제 도입이 올해 초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동력을 잃었다. 새누리당은 지방자치와 재정을 강화하는 공약을 발표했지만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를 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야권은 선거 초반 ‘새정치’ 화두에 불을 붙였다. 3월 초부터 기초공천 폐지를 화두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 안철수 운영위원장이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그러나 한 달여 만에 당내 반발에 부닥치자 현실적인 이유로 창당의 유일한 고리였던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광주시장 전략공천을 두고 ‘제 식구 챙기기’ 아니냐는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야권이 내세웠던 새정치 화두는 빛을 잃었다.
이슈도 바람도 없던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인물’이 그나마 변수가 됐다. 새누리당에선 원희룡(제주) 남경필(경기) 권영진(대구) 등 개혁 성향의 50대 광역단체장 후보가 대거 출마했다. 새정치연합은 안희정 충남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 현역 단체장들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선거의 블랙홀이 됐다. 세월호 참사로 정책, 인물, 공약은 물론이고 선거 자체가 국민의 관심 대상에서 멀어졌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로 각 당의 경선 일정이 늦어진 탓에 후보들마저 늦게 정해지면서 짧은 시간에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네거티브만 난무했다.
2010년에도 ‘천안함 폭침’이라는 대형 안보이슈가 선거판을 주도하면서도 ‘무상급식’을 두고 진보와 보수가 정면충돌하면서 정책대결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남은 건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 달라” “분노와 슬픔을 표로 말해 달라”는 여야 간의 구호뿐이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지방선거의 의미인 정책, 인물, 지방의 자율성 등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중앙정치만 남았고 후보들도 준비가 덜되어 네거티브만 난무한 선거”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희망을 주는 후보를 찍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는 것이 싫어서 찍어야 하는 ‘네거티브 보팅(voting)’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만족도는 한참 떨어지는, 이전보다 후퇴한 선거”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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