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들과 더불어 사는 법? 보수 진영은 반성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6일 18시 07분


서울 교육감 조희연 당선자(왼쪽)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당선자. 김미옥기자 salt@donga.com·뉴시스
서울 교육감 조희연 당선자(왼쪽)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당선자. 김미옥기자 salt@donga.com·뉴시스
교육감을 직선하면서부터 '교육대통령'이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덩치가 큰 서울교육감이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기존의 막강한 권한에 '직선'이라는 날개까지 달았기 때문이다. '교육대통령'이라는 말 속엔 교육부장관과 교육감의 권한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교육감의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대통령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6·4 지방선거에서 대통령과 교육철학을 달리하는 '교육대통령'이 17개 시도에서 13명이나 탄생했다. 교육 권력의 대이동으로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 분석도 한창이다.

대체적인 분석은 보수진영은 분열됐고, 진보진영은 일찌감치 단일화를 이뤘으며, 기존 교육 정책에 대해 30, 40대의 '앵그리 맘'이 옐로카드를 내밀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단원고 학생들이 참변을 당한 '세월호 참사'도 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분석은 선거 후 며칠까지만 유효하다. 선거 분석은 어디까지나 분석일 뿐, 앞으로 교육현장이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일례로 보수 진영이 얻은 표를 전부 합산하면 진보진영 교육감이 얻은 표보다 많다는 사실은 앞으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일을 하는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반대한 사람들의 의견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하지만, 그런 약속이 지켜진 적은 없다. 또한 교육청의 주요 보직도 자기 사람들로 대대적으로 바꿀 게 틀림없다.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선거란 원래 그런 것이다. 또한 '앵그리 맘'의 표심이라는 것도 불변이 아니다. 이번에 진보 진영에 표를 줬다고 해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하는 일에 모두 찬성하리란 보장도 없다. 4년 후에 정반대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성향이 다른 교육감이 번갈아 등장하는 것이다.

어느 진영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국민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처럼 냉엄한 현실은 교육현장을 장악한 진보 성향의 교육감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교육 현장이, 그리고 그 현장의 주인공인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결코 이념이 다른 교육감들의 실험용 모르모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교육감들에게 대한 주문은 한결같다. 교육현장이 원하는 정책을 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펼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두 정책이 일치한다면 고민은 없다. 문제는 일치하지 않을 때이다. 그럴 때 무엇을 우선할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그 철학을 현실화할 설득력, 반대 진영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교육현장은 실험실로 변해 여러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게 된다.

우선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자신들이 내건 공약을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본인조차 무리하다고 생각하거나, 현실성이 없거나, 쓸데없이 이념논쟁을 일으킬 만한 공약은 스스로 걸러내는 게 좋다. 빠를수록 좋다. 무리한 공약이 아니더라도 교육감의 능력과 철학을 현실에 접목시켜 교육발전에 기여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두 번째는 학생만이 교육감의 고객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감은 흔히 학생만을 바라보겠다는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다. 교육감의 고객 중에는 교사도 있고, 학부모도 있고, 학교도 있다. 국가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와 그 책임자인 교육부장관도 고객이다. 그런데도 갈등이 빚어지면 교사를 곤경에 빠뜨리고, 학부모를 당황케 하며, 학교를 샌드위치 신세로 만들고, 교육부와 교육부장관을 적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간단히 말해 교육계만이라도 파트너십을 복원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끼리 연대해서 세를 키울 생각은 접어야 한다. 연대할 일이 없지는 않겠지만, 각 시도의 교육감은 지역 주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로서 그 지역에 맞는 교육정책을 펼칠 의무가 있다. 바깥보다는 안살림에 충실하는 것이 자신을 뽑아준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래야 '진보 성향'의 교육감은 어떤 사안에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수 진영이 교육감 선거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전에 진보 성향의 교육감 때문에 빚어진 갈등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수 진영은 참패한 원인에 대해 반성부터 먼저 하는 게 순리다.

반성의 첫 번째는 변화를 읽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 교육감이 대거 탄생한 배경에는 분명,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희망이 놓여 있다. 진보 교육감에 표를 준 유권자가 모두 진보 교육감의 정책에 찬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기존의 보수진영 교육감들에게 표를 줘봤자 뭔가 자신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만한 새로운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실망했던 게 분명하다.

두 번째는 제도를 넘어 정서에 유념하라는 것이다. 교육계의 진보와 보수 싸움에서 전면에 등장했던 것들은 대부분 제도였다. 무상급식 문제, 학교의 형태 문제, 학생 인권 조례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보수 진영에서 보면 이들 사안은 분명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수 진영의 그런 주장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왜인가. 나쁘다, 안 된다고만 했지, 좋은 것, 되는 것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6명이던 진보교육감이 13명으로 대폭 늘어난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이번 교육감 선거도 정치에 물들었던 게 사실이다. 교육계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런 희망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안양옥)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교총의 이런 시도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가 그저 조용한 교육계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 또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돼 17개 시도 교육감을 몽땅 진보 성향의 교육감으로 채워버린다면, 그때 가서 다시 직선제를 주장할 수는 없다. 진보든 보수든, 이 시대는 교육의 진정한 수요자를 누구로 설정하고, 그들을 위해 어떤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 그런 일을 누가 제일 잘할 것인지를 묻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걸 분명히 해야만 직선제든 임명제든 잡음이 덜할 것이다. 이번에 13개 시도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탄생한 것은, 4년 후 그들의 성적표와 상관없이, 주민들이 변화를 갈구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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