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변신이 화제다. 그의 별명은 ‘무성 대장’, 상징은 트렌치코트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상남자’ 정치인. 그런 그가 최근 잇따라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지난달 ‘로봇 연기’를 선보인 데 이어, 이달에는 조미료 CF에 나올 듯한 아줌마 차림으로 나타난 것. 빨간색 앞치마에 머릿수건까지 착용한 그의 모습에 새누리당 의원들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의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 4월 29일 재·보궐선거(재보선) 때문. 젊은 세대를 비롯해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표가 ‘망가진 모습’을 선보인 것. 일례로 ‘아줌마 차림’은 새누리당이 민생을 챙기는 주부가 된다는 의미를 담은 ‘새줌마’를 홍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의 변화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변신이 보기 좋다”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보기 안쓰럽다”는 말도 나온다. 본인이 출마한 당대표 경선 때도 ‘상남자’ 스타일을 지켰는데, 당 명운이 걸린 재보선을 지휘하려다 보니 싫고 좋고를 가릴 수 없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당정청 소통의 희생양 되나
그런데 유독 김 대표의 독특한 변신은 당대표 경선 후 잇따르고 있다. 그만큼 어려운 과정을 뚫으려고 몸부림을 쳐왔다. 그는 지난해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7·30 재보선을 치렀다. 이때는 반바지를 입고 카우보이모자를 썼다. 이후 여정에도 쉼표는 없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 3년 차인 올해 그는 현 권력인 청와대를 등에 업고 미래를 넘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진들 사이에서 분투 중이다.
최근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그는 묘한 지점에 서 있다. 올해 초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1월과 2월만 해도 청와대는 ‘불통’ 비판을 받았고, 의도했든 안 했든 이는 김 대표에게 오히려 의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의 1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청와대를 향한 돌직구로 큰 관심을 모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선거(대선) 공약과 다른 새 화두를 던져버린 것.
청와대에 기죽어 있던 새누리당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신호도 나왔다. 그는 “국민의 쓴소리를 들어 정부에 가감 없이 전달함으로써 정부와 국민 간 가교 구실을 충실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운은 2월까지 이어졌고, 이른바 ‘탈박’(탈박근혜)으로 불린 유승민 의원이 ‘친박’(친박근혜) 이주영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한 것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김무성, 유승민의 당선 이면에는 청와대가 당을 무시하는 것 같은 모습에 대한 의원들의 반감이 투영됐다”고 해석했다. 김무성-유승민의 ‘비주류 투톱 체제’가 갖춰지면서 정국 주도권은 당으로 넘어오는 듯 보였다. 즉 김 대표가 정국의 새 주인공으로 우뚝 설 가능성이 커졌다. 더불어 그가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선주자 항목에서 새누리당 정치인 가운데 상위권을 지키고 있어 대선을 향한 입지도 더 강화된 듯 보였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봄을 앞둔 시점에 청와대의 ‘친박 친정체제 강화’와 새누리당 소속 중진들의 차별화 경쟁이 시작된 것. 먼저 당청관계에서 이병기 신임 대통령비서실장 임명 이후 청와대 주도의 소통을 보여주는 행보가 이어졌다. 여기에서 등장한 단어가 이른바 ‘KLL 회동’이다. 김무성 대표, 이병기 실장, 이완구 국무총리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집권 여당 대표와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국무총리가 심야 회동으로 자주 소통한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여권 주요 인사들의 회동과 소통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하다.
반면 굳이 정치적 득실을 따지자면, 김 대표의 ‘미래를 향한 차별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관측이 많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독대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대통령비서실장급으로 격하됐다는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 KLL 회동 소식이 전해진 뒤 여의도 정가에서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 당정청 수뇌 회동에 빗대 ‘김 대표가 당정청 소통의 희생양이 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당정청 수뇌 회의였던 이른바 8인회의에는 노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집권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대표와 원내대표, 내각에 포진한 총리와 장관 등 이른바 차기주자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였다. 야권 한 중진 인사는 “당정청이 대등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국정운영 방향을 함께 논의하려면 반드시 대통령이 참석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진정성 있는 소통을 위한 수평적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이 빠진 상태에서 당정청 수뇌 회동을 갖고 비서실장이 회동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은 수직적 리더십의 전형이자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당정청 KLL 회동은 공식적으로 정례화된 것이 아니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이 회동에 대해 당에 공지하거나 취재진에게 자신의 뜻을 표명하기도 애매해진다. 평소 ‘청와대에 돌직구’를 날리고 소통 방식을 비판하며 화제를 모았던 김 대표는 이제 입은 있으나 정작 입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할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독자적 리더십과 막강한 대중성으로 부상했다기보다, 이른바 ‘할 말은 하는 당을 만들자’는 염원을 상징했던 김 대표로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묘한 상황에 빠졌다.
주목되는 미래연대 재결합
여권 내에서는 차기를 노리는 경쟁자들이 미래 권력을 노리는 김 대표의 위상을 속속 위협하고 있다. 먼저 유승민 원내대표의 부상이 심상치 않다. 유 원내대표는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초이노믹스’에 쓴소리를 한 데 이어, 세월호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목소리를 냈다. 또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한 각종 의제와 관련해 원내 주도의 정국이 이어지면서 원내대표 위상이 부쩍 높아졌다. 물론 대중성에서 유 원내대표는 아직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여론조사만 봐도 유 원내대표는 아직 차기 대선주자군에 오르내리지 않는다. 김 대표의 보스 스타일과 비교할 때 유 원내대표가 지도자 기질이 약하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원내대표로 활동한 지 두 달 만에 정국 이슈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유 원내대표의 약진은 매우 빠른 편이다.
더구나 유 원내대표는 김무성 대표 앞에서도 ‘소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금리인하에 대해 부작용을 꼬집고, 기어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의원총회’를 열었다.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와 호흡을 맞추는 사이 유 원내대표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사령탑’이라는 점을 활용해 청와대와 밀고 당기며 또 다른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그렇다고 다른 최고위원들이 김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는 것도 아니다. 5·24 조치(대북 제재 조치)에 대한 이인제 최고위원의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달 천안함 5주기를 맞은 시점에 “5·24 조치는 양자 간 계약이 아니라 우리가 독단적으로 한 것이다. 우리가 새 정책을 만들어 실시하면 그만이지, 해제하고 말고 할 대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당은 우리 사회의 넘치는 힘이 북에 흘러들어가도록 변화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당의 민감한 사안인 대북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정부나 김무성 대표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여기에 김 대표는 여전히 ‘친박’의 견제를 받고 있다. 여의도연구원장 인선을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했고, 박 대통령은 최근 ‘친박 정무특보’를 임명하고 그들과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만났다. 김 대표로서는 청와대에 뒤통수를 맞고 당의 동지격인 최고위원들에게도 섭섭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목소리 내면 마찰, 고개 숙이면 거수기
한편 당 밖에서는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상위권’을 넘보는 중견 정치인들이 차기 대선을 향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선언’은 당 지도부와 의논을 통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홍 지사의 독자적 선택이었다. 큰 논란이 일었지만 어찌됐든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차기 대선주자로서 홍 지사의 인지도는 크게 높아졌다.
김 대표에 비해 젊은 차세대 주자들의 활동도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6·#12316;18대 새누리당(한나라당) 소장파 출신들로 구성된 ‘미래연대’ 멤버들이 4월 12일 한자리에 모이기로 한 것. 이날 회동에는 현역 의원은 물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전·현직 광역단체장 출신 인사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오남원’(오세훈·남경필·원희룡) 세 사람은 모두 여권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된다. 특히 이미 광역단체장을 역임했거나 현직으로 뛰고 있어 활동 폭이 넓다는 강점을 지닌다. 또 당대표 업적은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나는 반면, 자치단체장의 활동은 빨리 부각된다. 남경필 지사가 취임 직후 도입한 연정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당대표 당선 후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월화수목금금금… 이렇게 생활하고 있지만 쉽게 표가 나지 않는 자리가 바로 당대표”라며 “대표가 청와대에 목소리를 내면 마찰이라 하고, 고개를 숙이면 거수기라 비판하고, 거기에 야당 협조 없이는 이제 법안 통과도 어려워져 이래저래 김 대표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4·29 재보선에서 여권이 압승할 경우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대구의 한 중견 정치인은 “별 볼 일 없는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보는 기준이 아직은 선거”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가 지난해 재보선에서도 비교적 선전했고 이번 선거도 이긴다면 입지가 탄탄해질 것”이라며 “바뀐 위상에 대해 ‘어, 이거 보소’라는 말이 대구에서부터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6월이나 7월쯤 새누리당 당직 개편이 있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김 대표가 지난 1년간은 당 화합을 위해 탕평책을 썼지만, 이후에는 개혁 분위기 조성과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할 진용을 짤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이를 위해서라도 이번 재보선 승리는 그에게 절실하다.
미래 권력을 꿈꾸는 김 대표가 4·29 재보선 승리를 일궈 자신을 중심으로 한 당정청 새판 짜기에 나설지 주목된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전예현 내일신문 기자 whatisne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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