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궐선거에서 철저하게 호남의 외면을 받은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과 대권가도에 큰 흠집이 난 것도 난 것이지만, 호남발 야권 정계개편 조짐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 호남발 야권 정계개편 신호탄 되나
광주 서을에서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가 무소속 천정배 의원에게 20%포인트가 넘는 표차로 참패하자 광주를 비롯한 전남북, 그리고 호남 출신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 의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한 의원은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내에서는 천 의원의 호남신당 창당 가능성을 예측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수도권 재선의원은 “천 의원은 도발적인 성격이 있다”며 “친노(친노무현) 대 반노(반노무현) 구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천 의원은 창당을 한 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 지분을 놓고 새정치연합과 통합을 제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남신당론은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부터 새정치연합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옛 측근들이나 호남의 새정치연합 비주류 인사들 등 대여섯 그룹이 각자 제3신당을 모색해 왔다. 김한길 전 공동대표는 올해 초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당 추진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자제시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호남 중진의원은 다른 호남 의원들에게 “신당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표가 2·8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장악한 뒤 호남신당론은 수면 아래로 들어간 듯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 호남 민심이 문 대표 체제에 등을 돌리면서 호남신당론은 다시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재선 의원은 “보통 총선 전 해의 8, 9월경에 야권 재구성 논의가 시작되는 것이 통례이지만 올해는 통합진보당 해산에 이어 국민모임 출범, 그리고 이번 재·보선 참패로 정치지형 개편 논의가 빨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도 “호남 주류나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의식이 커질 것”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외감을 느끼는 ‘집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가 당으로서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호남신당이 아니어도 천 의원을 중심으로 한 무소속 연대도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 기로에 선 문재인 리더십
문 대표가 4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이번 재·보선에서 졌다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야권의 호재를 승리로 연결하지 못함으로써 리더십에 심각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게 됐다.
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창당 때부터 2·8전당대회 때까지 계속된 호남의 반노 정서를 극복하지 못했다. 비노(비노무현) 성향의 당 관계자는 “야권의 본류인 호남에서 퇴짜를 맞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두 달 넘게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유지해 온 문 대표의 위치도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 초선 의원은 “당분간 대선주자 1등은 하겠지만 2002년 초반 이인제 의원처럼 ‘불임 1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보선 후보 경선 원칙을 일찌감치 결정하고 후보를 선정했지만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공천 당시 “무난하게 공천하면 무난하게 패배한다”며 쓴소리를 했다. 천 의원과 정동영 전 상임고문의 탈당을 막지 못한 것을 두고 “정치력 부재”라는 지적도 많았다.
당 일각에서는 단단히 흠집이 난 문 대표의 리더십이 결국 당내 계파 간 내년 총선 공천권 다툼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노 성향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도 분위기가 지금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 내홍(內訌)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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