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내부는 ‘친노(친노무현) 대 호남’의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양상이다. 당 안팎에선 12년 전인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 집권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진 ‘빽바지’ 신당파(열린우리당 창당) 대 ‘난닝구’ 잔류파(민주당 잔존 세력)의 대결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달라진 건 ‘공수(攻守)가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빽바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렸던 유시민 전 의원을 비롯한 친노 진영과 수도권 ‘386’ 의원들이 주류였다. 반면 ‘난닝구’의 토대는 호남이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빽바지는 난닝구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다.
빽바지는 민주당 해체와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 그리고 열린우리당 출범 이후까지 난닝구를 반(反)개혁, 지역주의 세력이라며 척결해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빽바지의 공격에 맥을 못 추던 난닝구, 즉 호남정치 세력은 당연히 반노(반노무현)의 선봉이 됐다. 2004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노 전 대통령의 선거 개입 발언을 문제 삼아 탄핵했을 때 적극 도와준 쪽은 난닝구였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 참패 이후에는 ‘난닝구 호남’이 ‘친노 빽바지’ 진영에 반격을 가하는 분위기다. 광주 서을에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뉴DJ 발굴’을 내세우며 독자 정치세력화를 천명했다.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 진영이 문 대표 사퇴를 일축하고 패배의 책임을 온전히 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지 않은 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4일 전남 여수을의 3선 의원인 주승용 최고위원이 “4·29 패배는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심판”이라며 문 대표 책임론을 거듭 강조하자, 같은 최고위원인 서울 마포을의 정청래 의원은 “그럼 이겼으면 친노 패권의 승리인가?”라며 주 최고위원을 공격했다. 난닝구의 역습에 위기의식을 느낀 당내 호남 비노(비노무현) 진영이 문 대표를 겨냥하자 친노와 가까운 수도권 ‘386’ 의원이 문 대표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모양새다.
호남 난닝구의 반격은 내년 총선까지 야권의 정치지형을 요동치게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야권 재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북 정읍의 재선인 유성엽 의원은 전날 “야권 분열과 호남민심 이반, 부실 공천 등 3가지로 이번 선거의 패인을 요약할 수 있다”며 “분열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3지대에서 ‘헤쳐 모여’ 식으로 크게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반면 설훈 의원(경기 부천 원미을)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탈당한) 천정배 정동영과 함께해야 한다”며 복당론을 펼쳤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문 대표가 난닝구의 반격에 대응하기 위해선 “호남과 계파 문제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기득권 보장’ ‘동교동 우대’가 아니라 계파를 막론한 과감한 물갈이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빽바지 대 난닝구 논쟁 ::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부터 집권여당에서 벌어진 빽바지(급진·친노무현계) 대
난닝구(실용·옛 민주당계·호남)의 극심한 주도권-노선 투쟁을 일컬음. ‘빽바지’는 4월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노무현 경호대장’
유시민 전 의원이 흰색에 가까운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처음 등원한 것을 비꼰 표현. ‘난닝구’는 2003년 9월 민주당
해체에 반대하며 당무회의장에 난입한 옛 민주당 남성 당원이 러닝셔츠 차림이었던 것을 희화화한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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