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속내를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작심하고 싫은 소리 좀 해야겠다. 사랑한다면 잔소리라도 해 주는 게 도리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야기다.
다 알다시피 이 정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당의 이름을 바꿨으나 필자는 한 번도 이 당의 당적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선친 정일형 박사께서도 평생 당원이셨고 현재 국회의원인 아들 호준이도 당원이다. 구태여 가족 내력을 밝히지 않더라도 필자 정도의 고령 당원이라면 몇 마디 쓴소리쯤 할 만도 하지 않은가. 이 당이 참혹하게 전패한 4·29 재·보선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서론이 좀 길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선거는 ‘준비된 참패’였다. 선거 후 실시된 한 방송사의 8500명 대상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이 잘해서 이긴 선거’라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새정치연합이 잘못한 결과’라는 대답이 60%를 넘었다. 시중에는 ‘성완종 사태’를 거론하면서 야당이 질 수 없는 선거였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와병’이나 ‘노무현 정권의 특별사면 부각’ 등의 치밀한 전략이 먹혀 든 결과라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응답자의 60%가 답한 ‘야당이 잘못한 결과’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정치연합의 텃밭인 광주에서조차 무소속 후보가 20%포인트 넘는 큰 차로 승리한 까닭을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선거가 패배 쪽으로 이끌려 간 이유는 뭘까. 그 답은 ‘싸가지의 부재’다. 싸가지란 무엇인가. 장래성이다. 바른 예의다. 올곧음이다. 떳떳함이다.
시선은 자연히 당내 사정으로 옮겨 간다. 새정치연합을 지배하고 있는 건 누가 뭐래도 친노·범노·486이다. 세월호 사태 직후 관피아니 해피아니 하고 거명되던 무렵 당내에서 ‘노피아’니 ‘운피아’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노피아는 친노를 말하고 운피아는 운동권 출신 486을 지칭한다 했다. 그들의 잣대는 배타적 기득권을 지켜 내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극성스러운 패거리 문화가 깊숙이 뿌리 내렸다는 소리가 들린다. 최고회의에서 친노 패권주의를 둘러싸고 공공연한 격돌까지 벌어졌다. 정작 ‘친노’ 안에 노무현 정신은 없고 노무현 완장 찬 사람들만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당을 실효 지배하면서 항상 헤게모니 장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듯하다는 견해도 눈에 띈다.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사퇴할 때 외부 비대위원장 영입 문제를 놓고 합의까지 갔다가 누구와 어느 계파에 의해 왜 그게 뒤집혔는지 당내에서는 다 안다.
게다가 자기들은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의 결정적 순간 ‘문재인 후보는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간곡한 충고가 있었다. 문 후보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 핵심 측근들도 1997년 대선 때 동교동계 인사들처럼 ‘당선되면 청와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주변에서 제의했다. 그들은 거부했다. 그 선거에서 호남지역은 문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 줬으나 선거 후 그는 당장 인사 문제에서부터 표 나게 소외되고 있는 호남을 위해 변변한 목소리 한번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호남 사람들은 결국 나를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여타 지역 정서에만 호소하는 것 같다는 호남 쪽 볼멘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장래성 없고 예의 바르지 않고 올곧지 못하고 떳떳지 못하다는 결론은 그래서 나오는 것 같다.
재·보선 이후 대표 사퇴 요구와 분란이 잦아들지 않는다. 그러나 사퇴보다 중요한 게 있다. 당에서 없어진 싸가지가 복원돼야 한다. 그럴 기미가 정말 보이지 않는다면 모두 결심해야 한다. 신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싸가지 있는 순도 높은 양심 세력이 당의 전면에 포진해야 할 때다. 총선·대선에서 기필코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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