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배극인]日, 힘겹게 합의하고 갈등 불러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0일 03시 00분


[위안부협상 타결 이후]

도쿄=배극인 특파원
도쿄=배극인 특파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이 발표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특히 상당수 피해자 할머니들이 타결 내용에 반대하고 있어 이번 합의가 출구가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입구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협상 타결 후 일본 정부와 일부 언론의 태도는 이번 합의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협상 타결 후 ‘일본이 잃은 것은 없느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잃은 것이라고 하면 10억 엔일 게다”라고 답했다. 국내용 발언으로 보였지만 ‘일본은 10억 엔을 내면 끝이니 뒷수습은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는 ‘한일 신시대’가 열리기 어렵다.

특히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게 될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발언이 계속 나온다면, 한국 국민들의 인내도 한계에 이를 것이다.

일본은 독일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나치 피해자를 위한 화해 기금을 잇달아 만들었다. 2000년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보상에 나서고도 반성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올 1월 “인류에 대한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며 세계를 향해 거듭 사죄했다. 올 3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독일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며 일본의 변화를 촉구했다. 거슬러 올라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70년 폴란드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브란트 총리를 본뜬 듯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올 1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유대인 학살 기념관을 찾아 허리를 굽히고 헌화했다. 그가 이런 모습을 한국에서 먼저 보였더라면 지금 한일 관계는 어땠을까.

아베 총리는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해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아베 총리나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사죄하고 손을 잡는 모습은 일본의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렵사리 성사된 합의가 새로운 불화의 씨앗이 된다면 한일 관계는 ‘신시대’는커녕 ‘파탄’의 길로 접어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위안부협상#위안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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