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저 같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죽기만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다 죽어도 일본의 죄는 남아요.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입니다. 평화롭게 잘 지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일본 총리가 한국의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합니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의 유엔출입기자협회(UNCA)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88)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할머니는 “15세 때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군에게 끌려가 4년간 온갖 몹쓸 짓을 당했다. 죽지 않고 살아서 이곳(유엔)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게 눈물겹다. 내가 역사의 산증인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와 통역을 맡은 캘리포니아 한인풀뿌리단체 가주한미포럼의 김현정 사무국장은 회견 시작 전 ‘위안부’라는 호칭에 대한 설명부터 했다. 그는 “시민단체들은 ‘위안부’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일본군의 성노예’였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을 성노예라고 호칭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린 ‘할머니(grandma)’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유럽 언론의 기자 50여 명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몇몇 여기자들은 눈시울을 붉히는 등 숙연한 분위기에서 1시간 동안 회견이 이어졌다. 질의응답 시간에 일본 언론의 한 여기자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일본 국민은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총리가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사죄를 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모습을 볼 때까지 저는 (죽지 않고) 100세, 200세까지 살아 있을 겁니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를 호평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독일 언론 기자의 질문에 “반 총장이 실상을 잘 모르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가만히 있으면 2등은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전 맨해튼 뉴욕시청 앞에서 뉴욕시의회의 로리 컴보 여성인권위원장이 주최한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회견에도 참석해 “내가 위안부 피해자인데 일본은 (유엔 등 국제사회에)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날 워싱턴에 도착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89)도 워싱턴 인근의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피해자)이 많지 않다. 한일 정부 당국이 (합의 전에) 한번쯤은 피해자들을 방문해 소견을 들었어야 했다. 자기들끼리만 앉아서 합의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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