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화해·치유 재단(가칭) 설립준비위원회 김태현 위원장이 어제 일본 정부가 출연할 10억 엔(약 107억 원)의 성격에 대해 “치유금이지 배상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했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존중해 주겠다고 하는 차원에서 출연되는 것이기 때문에 배상금으로 보기는 어렵다”라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한일 합의에서 재단에 출연할 일본 정부 기금이 ‘사실상의 배상금’이라고 해석한 외교부 방침과 다르다. 합의 이행의 첫발인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부터 정부와 민간이 엇박자를 낸 것이다.
한일 위안부 협상 합의문에는 한국이 요구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그 대신 한일 양국은 위안부에 대해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에서 합의해 일본 측이 유리하게 해석할 소지를 남겼다. 이 같은 합의문을 발표하며 일본은 위안부 상처 치유를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을 출연한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법적) 배상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책임을 표명하고 내각총리대신 명의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사실상 배상 조치”라고 반박했지만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협상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차원에서 출연되기 때문에 치유금’이라는 김 위원장의 논리는 사실상 일본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단 운영 책임자가 일본 정부에 동의하는 입장이니 피해자들을 설득할 적임자인지 의문이다. 한일 양국이 첨예하게 다툰 기금의 성격조차 모른 채 위원장을 맡았다는 건가.
김 위원장은 회견 도중 외교부 당국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배상금이 아니라는 부분에 여러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기겠다”며 발언을 정정했다. 그 뒤 방송 인터뷰에서는 출연금의 성격을 일본 정부의 입장과 우리 정부의 입장을 조정해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논란거리다. 첫걸음부터 삐걱거리는 위안부 지원 재단이 상처받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다시 아픔을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