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 1년… ‘유엔 인권위 증언’ 김복동 할머니 인터뷰
“정부, 우리에게 말도 없이 합의… 명예회복-법적배상 포기 못해”
“일본이 전쟁하는데 군인들 사기 돋운다고 우리에겐 공장이라고 속이고 끌고 갔잖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90·사진)가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군에 끌려가던 열네 살 때 아련한 기억의 조각이 떠오른 것일까.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을 이틀 앞둔 26일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김 할머니를 만났다.
일본과 우리 정부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 온 김 할머니는 “정부가 우리에게 아무 말도 없이 (위안부 합의를) 타결했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가고 싶어 갔다’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며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과해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법적 배상을 하지 않는 한 절대 일본과 협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와 다른 위안부 피해자 10명은 위안부 합의를 반대하며 ‘화해·치유재단’을 통한 현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화제를 소녀상 얘기로 돌렸다. 아기를 다루듯 작은 소녀상 모형을 어루만지던 그는 “해외에 있는 소녀상을 보고 돌아서면 이상하게도 여동생을 해외에 혼자 두고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한 인물. 이후 23년간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기 위해 세계 각지를 다니며 활동해 왔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외국에 나가도 힘든 줄 몰랐는데 지금은 나이가 있어 금세 피로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40명. 이 가운데 김 할머니는 그나마 건강한 편이다. 하지만 워낙 고령이라 최근 왼쪽 눈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앞을 잘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할머니는 “계속 싸우겠다”고 했다. 그는 “사죄 못 받고 수많은 할머니들이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힘닿는 데까지 싸워야 한다”며 아직 시력이 남아 있는 오른눈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 정부가 외교 성과로 여기는 위안부 합의가 김 할머니에게는 삶과 죽음이 걸려 있는 문제였고 그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28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올해 마지막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시위는 올해 숨진 위안부 피해자 7명의 추모제 형식으로 진행됐고, 김 할머니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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