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일본 유력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낮 12시 40분. 일본 도쿄(東京) 미나토(港)구 주일 한국대사관 입구에 택시가 서더니 남색 모자를 쓰고 길고 하얀 눈썹이 인상적인 노인이 내렸다. 1995년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발표의 주인공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1) 전 총리였다. 그는 모자를 벗고 대사관 1층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조문을 마친 무라야마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분”이라며 “흉금을 터놓고 교류할 수 있었고 얘기도 잘 통했던 매우 기억에 남는 대통령”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도 집으로 초청해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며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힘을 합치자고 공감하며 인간적으로 사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두 시간 전에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일본 총리가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재임 시절이던 1993년 11월 경주에서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던 호소카와 전 총리는 “바로 지금 같은 계절이었는데 (경주의) 단풍이 매우 아름다웠다”며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매우 인상에 남는 분이었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여러 번 웃었던 기억이 난다”고 돌이켰다. 그는 “그렇게 건강하셨던 분이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뵙지 못해 안타깝다”며 “당시에는 한일 관계도 좋았는데 지금과 비교해 보면 옛날 얘기 같다. 양국 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분향소에는 그 밖에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일본 정치인들과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 등 외교 사절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전날에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가 예고 없이 분향소를 찾아 대사관 직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26일 영결식에 조문 사절로 누카가 회장을 파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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