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대선을 향한 22일간의 공식 레이스가 오늘 시작됐다. 어제그제 이틀 동안 기존 5당 후보와 함께 10명이 등록을 마쳤다. 전체 15명의 역대 최다 후보가 출마하면서 투표용지 길이도 30cm에 가까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선거전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양강(兩强) 구도를 형성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두 후보 중 누가 돼도 정권교체는 예정된 선거이다 보니 전통적인 지역, 보혁(保革) 대결 구도는 사라졌다. 다만 길 잃은 보수층은 여전히 선택의 고민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14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를 대표한다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은 합해도 10%에 불과하다. ‘보수의 아성’이라던 대구경북(TK)에서마저 두 후보의 지지율 합이 14%에 그친다. 초유의 대통령 파면·구속 사태로 치러지는 보궐선거라지만 보수는 가히 궤멸 수준이다.
보수 정치세력이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 보수-진보의 이념지도는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이념적 색채까지 겹쳐 호남과 영남으로 확연히 갈리던 ‘지역 몰표’ 현상은 사라졌다. 일부 세대별 지지도 차이가 나타나지만 보혁 대결 구도는 크게 누그러졌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그늘이던 지역·이념 대립 구도는 그 체제의 마지막 대선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번 5·9대선에서 사실상 사라지고 이후엔 전혀 새로운 정치지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보혁 구도의 실종은 ‘보수의 실패’로 우리 사회 보수-진보의 기준점이 왼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수층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권자의 30%가량은 스스로를 보수 성향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그동안 계속 줄어들던 보수층이 최근 다시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중도층이 축소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갤럽 조사에서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는 1주 전 334명에서 293명으로 줄어든 반면 1주 전 236명이던 ‘보수’는 271명으로 늘었다. ‘중도’에 숨었던 ‘보수’가 서서히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 중 상당수는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서 기존 보수정당에 기대를 접은 이른바 ‘신(新)보수층’이다. 보수 유권자의 표심은 일단 지지도 조사에서 안 후보(48%), 홍 후보(21%), 문 후보(17%), 유 후보(4%)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 안 후보와 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를 신보수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좌파 문재인’에 대한 거부감을 안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로 표출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신보수층의 확장 여부와 반문(반문재인) 정서의 응집도에 따라 대선 결과는 출렁일 수밖에 없다.
어제 바른정당 안에서는 유 후보 자진 사퇴론과 함께 안 후보 지지론이 불거져 나와 거센 논란이 일었다. 보수정당 내부 논란이 가속화되면 정치권의 보수 진영도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민주당은 ‘적폐 청산’ 구호를 사실상 용도 폐기하기로 했다고 한다. 불안해하는 중도·보수층에 안정감을 주면서 ‘반문 전선’을 흩뜨리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3주간 보수-진보 정치 진영의 움직임, 이에 따른 신보수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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