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속눈썹이 자꾸 눈을 찔러 서울 여의도의 한 안과를 찾았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는 불편한 속눈썹 몇 개를 제거한 뒤 유 의원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보수가) 통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뒤이어 들른 약국에선 약사 부부가 대선 후보였던 유 의원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약사 부부는 “우리는 자유한국당 고정표”라면서 “왜 안 합치느냐”고 물었다. 유 의원은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나 안약을 봉지에 담아 뒤돌아 나오면서 ‘개혁 보수’라는 가치를 떠올리고는 자못 씁쓸했을 것이다.
바른정당에서 유 의원처럼 ‘자강파’로 불리는 의원들도 앞날이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역에서 지지율이 제법 탄탄한 한 3선 의원은 자신을 믿고 새누리당(현 한국당)을 탈당한 기초·광역의원들을 걱정했다. 그는 “지역구에 노령 인구가 많은 동시에 대학도 있어 보수, 진보 성향이 각각 강하다”며 “바른정당이 이쪽(한국당)과 저쪽(더불어민주당) 사이에 섬처럼 있는 구도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르기가 사실 쉽지 않다”고 했다. 앞서 ‘통합파’ 김무성 의원은 “나를 따라 나온 동지들이 울고 있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느냐”고 자강파 의원들에게 물었다.
바른정당 분위기가 심상찮다. 11·13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하기로 하면서 통합파와 자강파 간 내홍이 봉합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폭풍 전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만기일인 10월 16일 이후부터 전당대회 후보 등록 마감일인 10월 30일까지 보수 정치권은 ‘재결합’을 놓고 격동의 보름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엄밀히 따지면 통합파와 자강파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한국당과의 재결합을 둘러싼 갈등이지 종착점으로 보수 대통합에 반대하는 인사는 없기 때문이다. 20석의 ‘미니 정당’이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도 깊다. 통합파는 자강파를 ‘보수야 어찌 되든 자기 정치 하는 사람들’이라고 오해한다. ‘보수 정치’에 대한 충정을 독점하려 들면서 생긴 오해다. 반면 자강파는 통합파를 ‘애초 반기문 보고 탈당한 사람들’이라고 오해한다. ‘보수 개혁’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불신이 빚은 오해다.
말 그대로 오해다. 자강파도 매일 현장에서 골수 보수층을 맞닥뜨리면서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동시에 통합파도 자신들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보수 통합과 친박 청산 중 무엇이 우선인지 매 순간 씨름하고 있다. 양측 의원들로부터 그들의 고심을 듣다 보면 그렇게 평행선을 달릴 일도 아니다. 적어도 이들 간의 거리가 한국당 여느 친박(친박근혜) 의원들과의 거리보다 멀진 않다. 이에 내홍이 노선 차이라기보다는 양측 수장격인 김무성, 유승민 의원 간 감정의 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1명만 이탈해도 원내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지는 바른정당을 향한 얘기다. 언젠가 보수 통합이 절실한 과제인 순간이 올 것이다. 지방선거 전일 수도 있고, 후일 수도 있다. 다만 내세웠던 ‘개혁 보수’의 가치를 어느 정도 관철할 수 있는 여건이어야 한다. 이는 다 합쳐서 58선(選)인 의원 20명이 똘똘 뭉칠 때에만 가능하다. 한국당과 섣불리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기에 앞서 ‘합친다고 보수가 살아나느냐’는 의구심이 든다면, “정치를 바로 하겠다”며 무릎 꿇었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면 아직은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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