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유럽 등 세계 3대 경제권의 경기지표가 한꺼번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글로벌 경제가 다시 리세션(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에 휩싸였다. 특히 유로존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독일 제조업 경기가 3년 만에 최악으로 떨어지면서 유로존이 2분기(4∼6월)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세계 15개 대형은행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해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뉴욕 증시는 21일 올 들어 두 번째로 큰 하락폭을 보였고 유가와 금값도 수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급락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해 미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이전보다 비교적 큰 폭(0.5%포인트)인 2.4%로 낮춘 다음 날인 21일 나온 각종 경기지표는 미국의 성장엔진이 식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필라델피아 연방은행이 발표한 미 동북부 지역 제조업 지수는 ―16.6으로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어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 4주의 평균 실업수당 신청건수가 작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악재가 전해졌다. 또 미국부동산중개협회(NAR)는 지난달 기존 주택의 가격이 1.5%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하루 사이에 악재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뉴욕 증시는 21일 전날보다 1.96% 떨어졌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지수도 2% 넘게 하락했다. 우리 란데스만 플래티넘파트너스 회장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의문시되는 가운데 그나마 회복 기미를 보이던 미국 경제까지 둔화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중국 제조업 경기도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1일 발표된 중국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는 48.1로 8개월 연속 기준점 50을 밑돌았다. 50을 넘지 못하면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의미로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니컬러스 에이자귀어 국장은 칠레 산티아고 포럼에서 “중국 경제위험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글로벌 경제가 긴장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도 이날 블룸버그TV 회견에서 “미국 경제가 매우 부진하며 세계적인 불황이 올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유럽 재정위기 가운데 세계 경제의 버팀목이라고 믿어왔던 ‘G2’(미국 중국)의 경제지표마저 나란히 부진하자 코스피도 급락하면서 1,850 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코스피는 22일 전날보다 41.76포인트(2.21%) 떨어진 1,847.39에 장을 마감했다. 외국인투자가들이 5거래일 만에 ‘팔자’세로 돌아섰고 기관투자가들까지 가세하면서 하락폭이 커졌다.
G2의 경기지표만큼 국제금융시장을 놀라게 한 것은 독일의 경제지표였다. 21일 발표된 독일의 6월 제조업지수는 44.7로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6월 투자신뢰도마저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고 독일의 향후 6개월간 경기 전망을 나타내는 6월 유럽경제연구센터(ZEW) 투자신뢰지수도 ―16.9를 나타냈다. 유로존 재정위기 국가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독일 경제에 먹구름이 낀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문분석기관인 마르킷의 자료를 인용해 1분기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던 유로존이 2분기에는 0.6%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보도했다.
원자재 가격도 일제히 급락했다. 성장 둔화로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날 4.0% 급락한 배럴당 78.20달러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 만에 8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8월 인도분 금값도 3.1%나 급락했다.
유로존 리스크에 노출됐다는 이유로 무디스가 세계 15개 대형은행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한 것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신용등급이 강등된 은행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등 미국의 5개 대형은행을 비롯해 캐나다왕립은행과 도이체방크 BNP파리바 크레디트스위스 등 유럽 은행 9곳이 포함됐다. 무디스는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이 은행들의 장기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졌고 글로벌 규제도 강화되고 있어 신용등급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상당수 은행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해 향후 추가 강등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은행들은 앞으로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가면서 그러잖아도 유로존 리스크로 어려운 금융환경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무디스의 이번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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