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일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현 정부의 공약인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목표를 밀어붙이면 일자리의 양과 질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경고다. 최저임금 수준이 전체 임금의 중간값에 이를 정도로 높아지면 자영업자의 고용 여력이 줄고 단순 기능인력의 취업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 등 청와대 정책라인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여부를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첫 분석이다.
○ 프랑스처럼 한국도 속도조절 필요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폭이 2018년 최대 8만4000명, 2019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 등 점점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는 임금 인상 첫해에는 어느 정도 충격을 상쇄할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올릴 경우 노동시장이 일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한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올라 일자리 유지가 어려워지는 계층은 매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저소득 근로자다. KDI는 고용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큰 ‘최저임금 120% 미만’의 급여를 받는 근로자 비중이 2017년에는 전체 근로자의 9%였지만 올해 17%로 늘어난 뒤 2019년 19%, 2020년 28%까지 급증할 것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싼 인건비의 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에서 일자리를 줄이고 그 결과 실업자가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이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상대적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KDI는 내다봤다. 통상 국가별 최저임금 수준은 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있는 중간임금과 비교해 나타낸다.
이런 비교 결과 한국의 중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올해 55% 수준이다. 2020년에 최저임금이 1만 원에 이르면 최저임금 비율이 68%로 2016년 프랑스 수준(61%)을 넘어 OECD 최상위 수준에 이르게 된다. 최 연구위원은 “이렇게 되면 단순노동 일자리가 줄고, 경력이 쌓이더라도 임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는 등 임금질서 교란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도 최저임금이 중간임금의 60%를 넘어선 2005년 이후 추가 인상을 멈춘 만큼 한국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국내외에서 우려하는 최저임금 정책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KDI만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올해 2월 “한국이 최저임금의 ‘추가’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 해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것은 소비를 늘려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지만, 연이은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을 평균임금 수준까지 높여 실업률을 끌어올릴 것이란 예측이었다. OECD 역시 지난달 한국 경제에 대해 “생산성 향상 없이 최저임금만 급격히 올리면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국내외 지적에도 정부 내에서는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말하는 등 ‘속도 조절론’이 여전히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범부처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한국 경제의 당면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기업에 영향을 주는 정책이 혼선을 겪으면서 성장과 분배 정책이 전반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은 국민의 살림살이를 펴 주기 위한 일종의 수단인데 지금 정부는 공약을 지키려 수단에 집착하는 모습”이라며 “공약에 얽매이지 말고 근본적인 경제 상황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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