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창업전선 몰려든 베이비부머… 고금리-최저임금에 ‘실버파산’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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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자영업 대출 63조 ‘눈덩이’

김모 씨(61·여)는 올 1월 부산 동래구에 치킨집을 열면서 은행 등에서 4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김 씨가 올해 갚아야 할 원리금은 매달 약 240만 원. 이후 4년간은 37만 원을 상환해야 한다. 그는 “은행 빚 갚는 것도 벅찬데 최저임금까지 올라 아르바이트생 없이 혼자 12시간씩 일한다. 그래도 장사가 잘 안돼 대출이 연체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60대 이상 고령층의 개인사업자 대출이 급증한 건 본격적인 은퇴에 돌입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상당수가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자영업자도 경기가 어려워지자 대출로 버티는 형편이다.

내수경기 악화와 대출금리 상승, 최저임금 인상 등이 맞물린 가운데 빚에 짓눌린 고령의 자영업자들이 ‘실버 파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 자영업자 증가세 이끄는 고령층

22일 국세청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생활밀착형 100개 업종의 개인사업자 가운데 60대 이상은 174만 명으로 1년 새 9.8% 늘었다. 같은 기간 50대 개인사업자는 5.1% 늘었고 30, 40대는 각각 4.2%,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대 이하 증가폭은 10.8%로 높지만 사업자가 20만 명에 불과해 사실상 60대 이상이 자영업자 증가세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이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든 영향이 크다. 지난해 퇴직한 김모 씨(61)도 올 4월 퇴직금에 은행 대출 5000만 원을 더해 서울 동대문구에 호프집을 차렸다. 김 씨는 “주변 친구들도 노후 대비를 제대로 못해 자영업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새로 창업에 나선 고령층뿐만 아니라 기존 자영업자도 내수 침체와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대형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61)는 올 들어 8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는 “상가 임대료와 최저임금이 함께 올라 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움직임은 고령층의 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1∼5월 5개 시중은행의 60세 이상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액은 2조9374억 원으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았다.

○ “실버 파산, 선제 관리해야”

문제는 고령층일수록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50, 60대 은퇴자 중 창업한 사람의 65.1%가 휴업이나 폐업을 했고 평균 7000만 원의 손실을 봤다. 고령층은 투자금액이 큰 반면 소비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개인사업자 대출이 급증한 가운데 연체율이 함께 올라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은행권 개인사업자 대출은 302조1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0.8% 늘었다. 대출 연체율은 1분기(1∼3월) 0.33%로 지난해 말보다 0.04%포인트 올랐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층은 소득이나 대출 상환 능력이 다른 연령대보다 떨어져 연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높다. 1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476만 원인 반면 60대 이상 가구는 302만 원으로 63%에 그쳤다. 또 지난해 30, 40대는 만기 때 대출금을 일시에 갚는 비중이 25%를 밑돌았지만 60대 이상은 44%나 됐다. 만기 때 목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해 고령층의 부실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임진 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경기에 민감한 소규모 창업을 한 60대의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노인 파산 등에 대비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건혁 gun@donga.com·김성모 기자

박정서 인턴기자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실버파산#자영업#고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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