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신규 취업자 수 증가가 5000명에 그친 ‘고용 쇼크’가 발표되기 하루 전날인 16일 오전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장하성 정책실장과 윤종원 경제수석비서관 사이에 짧지만 강렬한 설전이 벌어졌다. 당시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다음 날 발표될 ‘5000명 쇼크’를 짐작하고 있었다.
윤 수석은 최악의 일자리 지표 등에 대해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중 부정의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경제 지표 악화의 큰 이유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을 옹호하고 있는 장 실장이 즉각 반박했다. 장 실장은 “다들 (경제 지표 악화가)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하는데 다른 이유가 아닌 최저임금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회의장은 순간 얼어붙었고 두 사람은 더 이상의 발언은 삼갔다. 경제 현장에선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 청와대에선 여전히 최저임금 책임론을 놓고 핵심 경제 참모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 고용 쇼크에도 갑론을박 중인 경제 참모들
이런 기류는 19일 열린 긴급 당정청 회의에서도 이어졌다. 장 실장은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 정책들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고용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간 추진한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한 경우엔 개선 또는 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윤 수석과 마찬가지로 고용 쇼크의 큰 원인 중 하나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소득주도 성장’을 고수하고 있는 장 실장과 달리 청와대에서는 최근 경제 정책의 방향 변화가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총괄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을 ‘포용적 성장’을 강조하는 윤 수석으로 교체한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 혁신 현장을 연이어 방문하며 ‘혁신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6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피해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정부가 하는 (최저임금 부작용 보완) 조치는 한계가 있더라”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홀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장 실장을 두고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장 실장이 방향 변화를 못 읽는 것인지, 안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진보 성향의 장 실장 입장에서 규제 완화가 필수적인 혁신 성장은 내키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청와대 참모의 역할은 대통령의 뜻을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여권에서도 ‘경제팀 책임론’ 대두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장 실장 등 경제팀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서강대 부총장 등을 지내 민주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꼽히는 최운열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용 쇼크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숫자다. (청와대 정책실에서 고용 쇼크의 원인으로) 자꾸 인구 구조를 얘기하는데 그것으로는 실업률과 실업자 수 증가가 설명이 안 된다. 계속 그런 설명을 하면 국민들이 화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도 “그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만 이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포용적 성장으로 바꾸면 국민들에게 정책 전환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며 “사람을 그대로 두고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게 일반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경제팀 교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당 의원도 “결과가 안 좋으면 ‘죄송하다, 우리가 잘못 판단했다’고 한 다음 정책을 바꾸면 되는데 교수 출신들은 자기 이론을 잘 바꾸지 않는다. 도그마(독단적 신념)에 빠진 교수와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한 관료들이 현실적 대안을 낼 수 없다”며 장 실장 등의 교체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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