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장차관이 18일 오후 4시경 소상공인연합회(소상공인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각각 방문했다. 고용부 장차관이 한날한시에 사용자단체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시급 8350원) 인상을 앞두고 경영계를 달래는 한편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서울 동작구 소상공인회를 방문해 최승재 회장 등 집행부와 약 1시간 20분간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장관은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개편하겠다는 ‘당근’부터 꺼냈다.
이 장관은 “소상공인의 의견이 최저임금 결정에 더 반영되도록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 추천권을 보완하겠다”며 “전문가들이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설정한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을 심의하도록 결정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도 “물가, 고용, 경제성장률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에 대해서는 “30년간 이어온 기준을 명문화하는 거라 어쩔 수 없다”며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상공인회는 주휴수당(주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한 주를 개근하면 추가로 지급하는 하루치 임금) 문제를 꺼냈다. 김대준 사무총장은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미만은 주휴수당이 없다. 높은 최저임금 때문에 초단기 주 15시간 미만으로 직원을 쓰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그래서 일부 업종별 위원장들이 주휴시간에 대한 적용 기준을 주 40시간으로 올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최저시급 산정 시 유급휴일을 근로시간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정부안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속출할 수 있어 경영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같은 시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는 임서정 고용부 차관이 김용근 경총 부회장과 50분간 비공개로 회동했다. 임 차관은 이 자리에서 “주 52시간제의 계도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와 불가피성을 적극 설명했다.
배석자들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정부안이 시행되면 일부 대기업까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될 수 있다”며 “시행령이 아닌 국회 입법으로 해결하자”는 뜻을 강하게 밝혔다. 특히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되면서 과거에는 불거지지 않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불거지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경제 활력 제고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노동정책도 그에 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차관과 김 부회장은 회동이 끝난 후 “서로 입장을 확인했다”고만 했다. 결국 고용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보’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고용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 “유급휴일이 근로시간에 포함돼야 현장 혼란과 노동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 장관의 소상공인회 방문은 사전에 소상공인회가 요청해 이뤄졌다. 반면 임 차관의 경총 방문은 17개 경제단체가 최저임금법 시행령 강행 반대 공동성명을 발표한 전날 밤 갑자기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고용부가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경영계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경총 방문 일정을 급하게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경영계 관계자는 “협의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통보를 하러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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