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천의 한 햄버거 매장을 방문한 손모 씨(30)는 음식 주문에만 10분이 걸렸다. 손 씨가 매장에 들어서자 주문을 받는 직원 대신 ‘지금은 무인 주문기 운영 시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막상 무인 주문기를 써봤지만 계속 오작동을 일으켰고,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들 눈치에 식은땀을 흘렸다. 손 씨는 “처음 써봐 시간이 걸리는 데다 기계에 문제가 생겨도 도와줄 직원이 없으니 답답했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부작용이 자영업자 등 경영상의 어려움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식당 병원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에서 직원이 줄면서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제공받던 기존 서비스를 누리지 못해 불편을 호소하는가 하면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 최저임금 인상으로 ‘서비스 후퇴’
최근 음식점 등 서비스 매장에서는 사람이 몰리는 피크타임에 직원을 추가로 뽑지 않거나 손님이 적은 시간대에는 종업원 수를 대폭 줄이고 있다.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드니 햄버거 매장처럼 직원 채용보다는 무인 설비를 선호하는 곳들도 늘었다.
서비스 질 하락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나타난다. 최근 회사원 전모 씨(34)는 평소 들르던 고깃집의 달라진 서비스에 당황했다. 전 씨가 이곳 식당을 자주 이용한 이유는 음식뿐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고기를 잘라 구워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당 측은 얼마 전 “이제 아르바이트생이 없어 손님들이 직접 고기를 잘라 드셔야 한다”고 말했다. 전 씨는 “홀에 직원이 부족하니 이제 불러도 잘 오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일부 뷔페식 패밀리 레스토랑은 ‘셀프 서비스’ 제도를 도입했다. 손님은 식당에 들어서면 직접 사용할 접시와 테이블에 깔 종이매트를 챙겨야 하고, 식사 후에 자신이 사용한 식기와 쓰레기도 직접 정리해야 한다. 해당 업체는 셀프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가격을 다소 낮췄다. 하지만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하지 못하게 됐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고객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 동네 병원의 대기시간이 늘어나고 주말 진료를 포기하는 곳이 나오는 것도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등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노동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외과병원 원장은 “접수와 안내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줄어 환자 대기시간이 전보다 2배가량 길어졌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경기도의 한 영화관에는 근무하는 직원이 3명에 불과했다. 직원 2명이서 영화티켓 판매와 팝콘 주문, 주차 확인까지 처리했다. 손님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임에도 여러 명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회사원 이모 씨(32·여)는 “음료를 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상영 시간을 놓칠까 봐 조바심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날 6개의 상영관을 지키는 직원은 단 1명. 약 30분 동안 영화 3편이 연이어 상영되는 가운데 직원 1명이 각 상영관 입구를 왔다 갔다 하며 표를 확인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객들이 상영관을 잘못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등 혼란도 있었다.
○ 서비스 공백에 따른 분쟁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대를 줄여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일도 벌어지고 잇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은 자정이 되면 건물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이 사라진다. 당초 이곳 경비원들도 24시간 근무를 했지만 올해 7월부터는 용역비를 줄이려고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를 아예 휴게시간으로 주고 경비원들이 별도 공간에서 쉬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최모 씨(34·여)는 “주변이 유흥가라 집에 오는 길도 무서울 때가 있다. 그런데 건물에 경비원이 없다 보니 집 현관문을 열 때까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아파트들도 야간에 경비원을 찾는 주민과 휴게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경비원 사이에 시비가 붙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내년에는 최저임금이 더 오르는데 주민들 사이에 경비원 휴게 시간을 늘려 용역비 부담을 줄이자는 의견과 더 이상 ‘경비 사각지대’를 늘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제 예전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다만 서비스를 받으려면 선진국처럼 적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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