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진석]편의점 자율규약에서 더 살펴야 할 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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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서울의 한 골목에서 30년 이상 슈퍼를 운영하던 A 씨는 동네 터줏대감으로 편의점이라는 것이 처음 생겨날 당시부터 지켜본 사람이다. 초기에는 편의점을 신경 쓰지 않다가 커피와 교통카드 충전 서비스 등으로 손님을 계속 뺏기자 올해 초에야 편의점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인근 편의점 때문에 자신의 편의점을 열 수 없었다. 그 골목에서 제일 먼저 장사를 시작한 그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1월부터 시행 중인 편의점 업계 ‘자율규약’ 때문이었다.

주요 편의점 6개사는 자율규약에 따라 담배 점포 간 거리(서울의 경우 대부분 약 50m) 내에 6개 브랜드 중 1곳이라도 편의점이 있으면 개점을 거절하고 있다. 원래는 자사 가맹점주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250m 이상의 간격을 두고 편의점을 내주었고, 타사 점포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편의점 본사에 문의했다가 거절당한 뒤 A 씨는 답답한 마음에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까지 전화해 하소연했지만 장사를 할 자유는 찾을 수 없었다. 올해 들어 협회에는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불만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편의점 자율규약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로 어려워진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당장 곤란한 상황에 처한 가맹점주를 돕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편의점 본사들은 전기요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그동안 타사 편의점이 가까운 거리에 들어서는 과당경쟁으로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많았다.

선한 의도에서 도입된 자율규약이지만 A 씨 사례처럼 새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의점 본사들이 1994년 ‘자율협약’을 만들어 시행하다가 2000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고 중단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담합(부당 공동행위)이라는 판단이었다. 자율협약에는 협약에 참여한 대기업의 편의점이 80m 이내에 있으면 편의점 개설을 금지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지금의 자율규약은 그 거리 제한이 ‘담배 점포 간의 거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공정경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본분인 공정위는 18년이 지나 자율규약을 승인해줬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토대인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측면도 살펴야 한다. 공동체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시설도 아닌 상점을 내는 문제에 정부의 간섭이 과한 점이다.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일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그만큼 침해받지 않아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일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 법이다. 편의점의 자율규약에 우리 공동체 기본 원칙을 위반하는 점이 있는데도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안의 본질을 좀 더 명확히 보고 싶을 때는 그 특징을 확대한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해 보면 이해가 쉬워지곤 한다. 만약 편의점의 자율규약 같은 것이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치킨집이나 커피점, 피자집, 빵집 등에도 적용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퇴직 후에 소일거리로 자영업을 생각하던 많은 사람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태가 생긴다. 기존에 그 업을 하던 사람들은 보장된 상권 덕분에 더 많은 권리금을 받게 될 것이다.

명분 좋은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세심하게 살피고 정교하게 다듬는 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h@donga.com
#편의점 자율규약#최저임금 인상#주 52시간 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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