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에 대해 학계가 1년여만에 말을 바꾼 금융당국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던 금융당국이 이번엔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한 것은 외부감사를 부정하는 행태로 규제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24일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바이오-증선위 행정소송 쟁점과 전망’ 토론회(바른사회시민회 주최)에서 “금융감독원이 처음엔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했다가 상황변화에 따라 분식회계라고 보며 법적 판단을 번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문제는 지난 2016년에 불거져 당해 5~6월 금감원 자체조사를 받았다. 그 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0월 상장을 앞두고 금감원 위탁 한국공인회계사협회의 감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기준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받았다. 또 같은 해 12월 참여연대가 바이오젠의 콜옵션 회계처리에 대해 금감원에 질의했으나 금감원은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회신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뒤 회계위반 의혹이 다시 불거지자 금감원은 2017년 4월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감리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젠 ‘콜옵션’ 공시 누락을 지적했고 11월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과정을 분식회계로 판단했다.
증선위는 2012년 삼성바이오에피스 설립에 공동투자한 미국 바이오젠도 설립 때부터 에피스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음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에피스를 관계사로 두지않고 종속회사로 뒀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국제 회계기준 IFRS를 적용시키며 에피스를 관계사로 전환해 1조9000억원의 흑자기업이 됐다는 것이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2종이 2015년 국내 허가를 받으면서 바이오젠이 보유한 에피스 콜옵션 행사 가치가 행사비용보다 커져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관계사로 전환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외부 회계법인들로부터 적정 판단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바이오젠도 지난해 콜옵션 행사 전까지 매해 사업보고서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의 기업경영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공시했다.
전 교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도 안진과 삼정 등 국내 3대 회계법인 자문을 받아 회계기준을 변경했다”면서 “증선위 판단은 근본적으로 외부감사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자칫 국내 자본시장 전체 시스템을 정부가 부정하는 모순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삼현 교수는 “2017년 이후 금감원의 재감리가 과거와 판단을 달리함으로써 금감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하락하고 자본시장에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2011년 국제 회계기준인 IFRS를 도입했지만 금융당국은 기존 회계기준 GAAP 잣대를 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GAAP은 ‘규정중심’인 반면 IFRS는 기업활동이 복잡한 만큼 기업에게 일정부분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함께 토론 패널로 나선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IFRS 회계기준을 적용했는데, 금융당국이 기존 국내에 적용해온 GAAP 회계기준으로 사안을 들여다보니 엇박자가 생긴 꼴”이라며 “결국 증선위가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판단을 내린 셈”이라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IFRS는 기업의 의견을 중시하라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규정만 보려는 금융당국에 쓴소리를 했다.
최승재 변호사는 “최근 행정법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행정처분 집행정지 청구를 인용한 것이 삼성의 회계처리가 정당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행정소송에서 싸워볼 만한 논점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이 사건은 기업과 회계사 모두에게 중대한 사회적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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