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후계구도 갈등에 휘말리면서 일상적 마케팅 활동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투자, 신규 출점까지 크게 위축됐다. 현장 일선에서 뛰어야 할 계열사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의 모든 관심이 분쟁에 쏠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특히 롯데그룹이 공격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발이 묶였다. 7일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롯데는 그동안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돼 왔던 동부그룹의 농업화학 계열사인 동부팜한농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이날 “애초부터 인수 계획이 없었다”고 본보에 입장을 밝혔지만, 최근 롯데의 오너 리스크로 대형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당초 올해 신규 사업 진출에 7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혀 인수합병에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자세였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국내에서 경영의 첫발을 내디뎌 큰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롯데케미칼은 그동안 타이탄케미칼, 주식회사 삼박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왔다. 2012년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이 합병해 ‘롯데케미칼’로 새 출발을 했고, 올해 2분기(4∼6월)에는 영업이익 6998억 원을 기록해 분기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신규 사업추진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롯데는 서울 은평구에 복합쇼핑몰, 전남 무안 남악과 전북 군산에 아웃렛 출점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도 인근 소상공인들과의 상생 문제로 공사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 이번 사태로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부산 북항에 계획 중인 복합리조트 사업 역시 좌초될 위기다. 정부가 올해 안에 복합리조트 사업자로 2곳을 추가 선정하기로 했지만, 롯데에 사업허가를 내줄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다.
올해 말로 허가가 끝나는 롯데면세점 서울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재허가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최근 정부는 롯데의 면세점 재허가를 백지 상태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본보 8월 5일자 1·3면 참조).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연 매출은 각각 1조9800억 원과 4800억 원. 소공점은 서울시내 전체 면세점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만큼 만약 롯데가 사업권을 뺏긴다면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마케팅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특히 백화점과 대형마트 슈퍼 등 주요 유통업체를 거느린 롯데쇼핑의 타격이 크다. 일단 롯데쇼핑은 경영권 분쟁 사태가 터진 후 가급적 홍보 활동을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달 말 롯데백화점이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대규모 출장 세일을 성공적으로 벌였지만 그 이후로는 대형 행사를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롯데물산은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형 태극기를 설치했지만, 오히려 ‘일본 기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다.
계열사 경영진의 대외활동도 상당히 위축된 상태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그룹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신동빈 회장이 언제 찾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계열사 대표와 임원들은 그야말로 비상 대기상태”라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