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 기업에 235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신용도가 떨어진 기업이 수출계약서만 제시하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특별보증도 해준다. 지난달 수출이 1년 전보다 11% 감소하는 등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짐에 따라 정부가 긴급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해외 현지의 텃세와 인력난을 해소해 달라는 기업의 호소에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손쉬운 단기 자금 대책만 나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9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금융 지원을 중심으로 한 ‘수출활력 제고 대책’을 발표했다.
A4용지 60쪽 분량의 대책에 따르면 올해 수출 기업이 받을 수 있는 무역금융 규모는 235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15조3000억 원 늘어난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한국 기업의 수출 실적이 3개월간 마이너스를 나타내며 기업이 자금난과 신용도 하락을 겪자 돈을 풀어 숨통을 틔우기로 한 것이다.
무역금융은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수출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거나 무역보험공사 보증으로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져 자금난을 겪는 수출 기업을 위해선 수출계약서만으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특별보증을 신설했다. 원래 은행은 기업의 재무 안정성과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해 주지만 1000억 원 규모의 보증 상품을 만들어 수출계약만으로도 대출하도록 한 것이다. 수출계약 후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 몇 개월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 수출채권(해외어음)을 빠르게 현금화하는 보증 상품도 만든다.
정부는 중소·중견기업 4만2273개를 대상으로 해외 전시회 등 수출 마케팅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1976개 늘어난 수치다. 일례로 글로벌 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을 일대일로 이어주는 상담회를 개최한다. 반도체 등 기존 주력 수출 품목을 대체할 바이오, 2차전지 등 6개 산업을 새로운 수출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금융 및 마케팅 지원 방안도 대책에 담겼다.
일각에서는 기업 현장에서는 통상 분쟁으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를 겪고 있는데도 정부 대책은 과거 수출 대책의 단골메뉴인 금융, 마케팅 지원에만 집중됐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1월 기업의 수출 어려움을 조사한 결과 통상 관련 애로사항은 11건으로 무역보험 관련 애로(10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통상 관련 이슈는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금융 등 단기 대책 중심으로 담았다”고 말했다.
수출 기업들의 체력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해 수출 6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철 지난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등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하강기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2015∼2017년 17개의 수출 대책을 발표했지만 지난해에는 관련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반도체 착시로 수출 실적이 좋게 나오자 기업들의 체력을 높이는 데는 소홀히 한 채 최저임금 인상 등만 강요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기업들이 고용 부문에서 비용이 늘며 경쟁력 약화를 겪고 있다”며 “진통제식 처방보다는 산업 구조를 재편해 기업의 체력을 키워주는 게 수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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