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출입구 봉쇄하고 “임대료 올려라” 中 지방정부의 횡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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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임대기간 20년으로 정한 1999년 제정된 계약법 악용
기존 50년 계약 무시하고 압박

중국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의 스포츠용품 제조업체인 신신체육용품유한공사(신신상사의 중국 법인)는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 가까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회사 출입구가 봉쇄돼 있다. 사람은 출입할 수 있지만 재료 반입과 제품 출하는 불가능하다.

스타농구공으로 유명한 신신 공장이 봉쇄된 것은 촌정부와의 법리 논쟁 때문이다. 신신은 공장이 있는 중한촌(中韓村·한국의 읍 정도에 해당)과 1991년 50년간 토지를 사용하는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촌정부가 1999년 중앙정부가 제정한 중국계약법을 근거로 기존 계약이 만료됐다며 임대료 대폭 인상을 요구했고 이를 신신이 거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계약법은 최장 임대기간을 20년으로 정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중국계약법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약법은 당초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무분별한 토지임대를 제한하기 위해 최장 임대기간을 20년으로 묶어 놓았다. 지방정부들은 이 법을 악용해 그전에 장기계약을 체결한 기업에 대해서도 관련 조항을 적용하고 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땅값이 급등한 지역의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기존 기업을 쫓아내거나, 임대료를 비싸게 받기 위해 ‘최장 20년 조항’을 소급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수교 초기 중국 지방정부들은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50년 토지 임대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고, 당시 한국 기업들도 이 같은 조건에 끌려 연해 지역에 대거 투자했다.

신신의 경우 촌정부가 임대차계약 시점인 1991년부터 임대기간을 소급 적용해 지난해까지 20년 임대가 끝났다고 통보했다. 반면 신신은 기존 50년 계약을 계속 유지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계약법이 발효된 1999년부터 20년을 산정하자고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새 법이 기존 계약으로 소급 적용되지 않거나 경과규정을 두는 게 일반적이다. 신신 측 법률대리인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기업들도 새 계약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데 아직까지 최고인민법원(한국의 대법원)의 판례가 없어 법리 공방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촌정부가 이 문제를 법원에 갖고 가지 않고 촌민들을 동원해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신의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로 다른 지방정부들은 드러내놓고 소급적용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새 법이 시행되고 있으니 이를 감안해 임대료를 높여주거나 공장을 옮기는 게 어떠냐는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임대료를 높여주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한다거나 공장 신축 허가를 불허하는 등의 행정 조치를 동원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런 압력 때문에 칭다오의 한국기업인 S사는 공장을 시 외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한국 기업들은 산둥 성에만 6200여 개가 몰려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수교 초기 중국의 싼 임금과 낮은 땅값 때문에 건너갔다. 이들 기업들의 임대기간이 올해부터 20년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더욱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지금도 종종 계약법 편법 적용 문제를 호소하는 상담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한국기업#임대료#중국 지방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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