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폭 작지만 얻을것 많아… 기회의 땅 잡을 특화전략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2일 03시 00분


[한중FTA 빗장 열린 13억 시장]<上>자유무역 활용도 높여라

“전체 농축수산물 중 수입액 기준 30%를 관세 인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 큰 성과다.”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11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성과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교역 확대를 위해 체결하는 FTA를 두고 ‘개방 수위를 낮췄다’는 걸 가장 큰 성과로 꼽는 상황은 한중 FTA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적극적인 협상으로 개방 폭을 높이지 못하고 수비적 태도로 일관해 FTA로 얻을 기대이익을 극대화하지 못한 것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중 FTA 타결을 계기로 대외 무역정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단순히 FTA에 따른 피해를 줄이려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 농어민, 소비자가 머리를 맞대고 중국 등 신흥 내수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통상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 활용률 낮은 한-아세안 FTA 반면교사 삼아야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중국이 워낙 큰 시장이고 위협적 요소가 많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FTA보다 실질적으로 높지 않은 수준으로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기업의 활용도가 떨어지면서 FTA에 따른 교역 증가 이익이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07년 체결한 한-아세안 FTA는 개방 수준이 낮아 기업이 잘 활용하지 않는 대표적인 무역협정이다. 당시 정부는 농어업 보호를 위해 쌀 마늘 양파 돼지고기 등 주요 농축수산물을 대거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 대신 아세안 국가들은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을 관세 인하 대상에서 뺐고 자동차 관세율도 5% 안팎을 유지했다. 이러다 보니 무역 현장에서 “FTA의 효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고, 정부는 뒤늦게 베트남 등과 별도의 양자 FTA 체결 추진에 나선 상황이다.

한중 FTA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개방 폭이 낮아지면서 한국산 막걸리 김치 커피 간장 등은 20년에 걸쳐 서서히 관세가 없어질 예정이고 치즈 등 최근 중국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진 일부 유제품도 관세 철폐가 15년 뒤로 미뤄졌다.

일각에서는 한미, 한-유럽연합(EU) FTA의 체결 및 국회 비준을 추진했던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 비해 현 정부 내에 개방도 높은 FTA를 적극적으로 이끌 동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일부 세력의 FTA 반대 목소리가 국가적 갈등을 유발할 정도로 거세져 국력이 소모되다 보니 FTA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가 위축됐다는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방에 소극적인 일부 부처나 이익단체를 설득하려는 모습이 한중 FTA 협상 과정 내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며 “민감한 것은 빼고 넘어가는 식의 협상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맞춤형 전략으로 FTA 효과 극대화해야

이미 타결한 협상의 주요 내용을 고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그 대신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향후 중국과 벌일 추가 협의에서 원산지 인정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하고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활용 지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한중 FTA에 따른 실익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정부가 애써 체결한 FTA가 현장에서 얼마나 잘 활용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기업이 한중 FTA에 맞춰 생존전략을 짜는 것도 필수다. 한국 기업이 경쟁 우위에 있는 분야에 특화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현지 진출 기업 가운데 국내로 돌아오는 이른바 ‘유턴 기업’에도 한중 FTA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한중 FTA로 무관세 혜택이 현실화하면 해당 업종의 유턴 기업들은 과거 중국에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현종 전 주유엔 대사는 “조기에 관세가 사라지는 분야에 속한 중국 진출 기업을 국내로 돌아오게 하면 FTA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현지에서는 한중 FTA를 양국이 윈윈하는 기회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과 달리 주요 교역국과 FTA를 맺은 경험이 많지 않은 만큼 FTA 체결로 인한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 등을 기대하는 것이다.

류루이(劉瑞) 중국 런민(人民)대 경제학원 교수는 “한중 FTA는 한국의 많은 기업이 큰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이 지금까지 FTA를 맺은 어느 나라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얻을 기회가 많다”고 분석했다. 한국을 중국의 영향권에 넣으려는 정치 외교적인 의도에 대해서도 그는 “FTA가 한미 군사동맹관계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한국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류 교수는 “한국은 일부 최첨단 제품 분야에서 서방 선진국에 밀리고 중저가 제품은 중국 등에 밀리는 만큼 한중 FTA가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홍수용 기자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한중FTA#자유무역#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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