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항구로 들어갔을 땐 문제없이 통관됐는데, 다른 항구로 들어가니 아이스크림 성분에 문제가 있어 안 된다는 겁니다. 유통기한은 다 돼 가는데 무작정 붙잡고 있을 수도 없어 다 폐기했습니다.”
지난해 국내 유제품 제조업체 B사는 중국으로 아이스크림을 수출하려다 비관세 장벽에 가로막혀 수출 물량을 전부 폐기했다. 이미 중국 다른 해관(海關)에서는 정상적으로 통관된 제품이었다. 큰 걱정 없이 새로운 수출 항구를 개발하려 다른 해관으로 같은 제품을 들여보냈지만 예상치 못하게 통관이 거절됐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B사 관계자는 “후환이 두렵다”며 통관에 문제가 있었던 항구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중국 시장이 새롭게 열렸다. 관세 장벽이 낮아진 만큼 품질 좋은 한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돼 중국으로의 수출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중국 경기 침체의 여파로 1월 대중국 수출은 오히려 급감했다. 중국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인들은 “중국 내수가 어려운 데다 갈수록 비관세 장벽이 높아지고 있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 중국 ‘비관세 만리장성’
중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한다는 명분으로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등 유관기관이 민관 합동으로 구성한 비관세장벽협의체가 22일 현재 시급히 해결해야 할 비관세 장벽으로 꼽은 사례는 11개국 48건이었다. 이 중 중국의 비관세 장벽이 26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의 경우 기술규정, 표준 등과 관련된 기술무역장벽(TBT)이 8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는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해 올해 1월 31일부터 시행했다. 새로운 규격 인증을 받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당장 인증을 받지 못한 수출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까다로운 통관 절차도 문제다. 가공식품업체 C사 관계자는 “FTA 협정에 따라 48시간 이내에 통관을 해주기로 돼 있는데 별 이유 없이 하루 이틀씩 늦는 경우가 있다”며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은 하루가 시급한데 미리 대응할 수가 없어 비용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일부 수출업체는 ‘관시(關係)’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국내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전문회사인 코스맥스 양치연 본부장은 “중국에 수출해 본 경험이 없는 업체들은 수수료를 지불하고 위생허가를 대신 받아주는 ‘대리상’을 이용하는데, 해관원 등에 로비를 하는 등 관시를 통해 허가를 빨리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방마다 통관 정책이 다르고, 중앙정부의 지침이 지방정부에 하달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수출 기업을 괴롭히는 비관세 장벽으로 꼽힌다. 같은 제품이라도 상하이에서는 통관된 제품이 베이징에서는 안 되기도 한다.
이상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관마다, 또는 같은 해관이라 하더라도 해관원마다 품목 분류를 다르게 해서 한 제품의 관세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등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통관 세부 절차 등을 명문화한 문서가 없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 비관세 장벽 해소 위해 정부·기업 나서야
일각에서는 정부가 FTA 협상 과정에서 비관세 장벽을 충분히 낮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중국 지방정부의 재량권에 대해 간과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협상 과정에서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정책 일관성이 없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협정문에서도 이를 최대한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중 FTA 협정문 최초 규정은 ‘양 당사국은 지방정부가 협정상 모든 의무와 약속을 준수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비관세 장벽의 범위가 모호하고 지방정부의 협정 불이행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 자체가 공개되지 않다 보니 실질적으로 이를 문제 삼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협정에 좀더 구체적인 문구를 넣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과의 FTA 협정 이후 비관세 장벽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FTA 챕터별로 14개 위원회와 2개 소위원회, 1개 작업반을 꾸려 중국의 비관세 장벽을 조사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다. 비관세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신속하게 도울 수 있도록 중국 내 7개 무역관을 중심으로 현지대응반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주형환 산업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경제통상장관회의를 열고 비관세 장벽 해소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수출 기업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도 요구된다. 이상훈 연구위원은 “비관세 장벽의 범위가 포괄적이고 다양한 만큼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나서서 정부에 건의를 해야 문제를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 비관세 장벽
관세를 부과해 수입품의 가격을 높이는 방법 이외에 통관, 위생검역 강화 등 국외 생산품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한 모든 비관세 조치 및 관행을 말한다. 세종=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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