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제조업체 A사는 올해 초 아이섀도와 립스틱 등 색조화장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내용의 계약을 현지 바이어와 맺었다. 가을 시즌에 맞는 유행 컬러를 반영해 제품을 수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세관 위생허가가 미뤄지면서 통관이 늦어졌다. 계절과 유행에 민감한 색조화장품 수출이 지연되면서 A사는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12월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장벽은 크게 낮아졌지만 비관세장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중국 측에 각종 비관세장벽 철폐 등을 포함해 성실한 FTA 이행을 촉구하고, 남아있는 FTA 추가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비관세 ‘만리장성’ 뚫어야
최근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규정·표준이나 통관 관련 제한 조치, 위생 및 검역 조치 등 비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 14일 국내 민관 공동협의체인 비관세장벽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협회에 접수된 14개국 49건의 비관세장벽 중 중국 관련이 전체의 53.1%(26건)를 차지한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더 노골적으로 비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중 통상 당국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비관세장벽 문제를 풀지 않으면 FTA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 측의 통관 관련 규정에 확실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윤섭 한국무역협회 북경지부 차장은 “중국의 비관세장벽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느슨했던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에는 공식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부터 적용되는 3년차 관세율 인하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정부가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 개시
내년에 시작되는 한중 FTA 서비스·투자 부문 후속 협상을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비스·투자 협상의 핵심은 문화콘텐츠 시장 개방이다.
중국이 최근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 등으로 한류 열풍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협상이 개시되면 문화콘텐츠 시장 개방을 둘러싼 양국의 힘겨루기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 수출 2위 시장이다. 높은 성장 잠재력도 갖추고 있다.
지금도 중국 문화산업에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만연해 있다. 해외 드라마의 프라임타임(오후 7∼10시) 방영을 금지하고, 외국 영화에 대해선 스크린쿼터제를 실시 중이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정혜선 연구원은 “문화콘텐츠 분야에 집중된 규제를 철폐하고 저작권 보호 장치를 마련해 우리 업계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협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양국 간 분업생산 체계를 확대하는 등 새로운 FTA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갈수록 확대되는 중국의 ‘프리미엄 내수시장’에 적극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국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란 지적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무작정 한국 제품의 수출을 늘리겠다는 식의 폐쇄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전략적 투자나 펀드 조성 등을 통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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