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노동조합과의 협상을 도와달라는 GM의 요청에 정부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노사 협상은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을 위한 3대 전제조건에 GM과 합의한 상황에서 노사 협상이 마냥 늦어지거나 결렬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GM이 한국에서 사업을 지속할지 의지를 가늠할 신차 배정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통상 GM은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에 2, 3년 후 생산할 신차를 어느 공장에서 만들지 결정한다. GM은 한국 정부의 지원 방안이 마련되고 노조가 고통 분담에 나선다면 한국GM 정상화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GM에 대한 정부의 실사와 지원 방안 마련이 한 달 안에 이뤄지기는 사실상 힘들다. 결국 현재 진행 중인 한국GM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이 신차 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한국GM 고비용 구조 해소가 열쇠
정부가 노사 협상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GM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건 노조 문제에 대해 정부와 책임을 공유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노사 합의 불발로 나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경우, 정부에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M은 연간 5000억∼6000억 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을 줄여야 한국 사업이 지속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있더라도 매년 누적되는 영업 손실을 줄이려면 고정비, 그중에서도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본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국GM 2018 임단협은 이달 7, 8일 두 차례 진행된 뒤 GM 군산공장 폐쇄 발표 후 중단됐다. 사측은 임단협 협상 첫날부터 복리후생비를 따로 계산해 노조에 보여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자녀 학자금 지원, 교통비, 복리후생비와 연월차 휴가 미사용에 대한 보상금 등 1만6000명의 임직원에게 지급된 복리후생 관련 비용이 3000억 원이 넘는다.
GM은 군산공장 폐쇄로 연간 인건비 2600억 원을 줄이고, 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지급 보류, 복리후생비 축소로 3000억 원 등 연간 총 56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GM이 이례적으로 공개한 2018년 임단협 사측 안에도 이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임단협이 결렬되면 GM은 군산공장 폐쇄처럼 기습적으로 부평공장 축소 등 추가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GM은 한국GM 부실 원인을 높은 임금과 낮은 생산성이라고 지목했다. 임단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GM이 이 문제를 부각시켜 정부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려 할 것”이라고 했다.
○ 노조 강경 주장 속 여론 주시
노조는 군산공장 폐쇄 철회, GM의 시설투자 확약 등 9개 요구안을 고수하고 있다. 강경한 주장을 앞세웠지만 노조의 속내도 복잡하다. 여론의 향방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GM 노조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노조가 참여하는 GM에 대한 실태 조사가 이뤄지고 GM의 투자 계획이 나오는 게 우선이다. 노조도 회사를 회생시키는 데 협조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달 22일 열린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 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하지 않았다.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나온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퇴진’ 주장도 지금은 거둬들였다. 노조 관계자는 “총파업을 강행하면 노조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질 게 뻔한 상황에서 총파업을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노조 측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조 책임론만 부각시키면 ‘GM의 경영 실패’라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GM 사태는 구성원 전체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영진과 노조 모두 고통을 분담하고 새로운 경영 계획을 짜는 데 동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고비 넘겼다 해도 추후 더 크게 위험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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