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4일 금융소득 종합과세와 주택 임대소득 과세 기준을 강화하라는 대통령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권고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은 민감한 세법을 두고 정부와 특위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위가 민간 중심의 자문기구이긴 하지만 대통령 직속 기구인 데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있어 상당수 국민은 특위의 권고안을 사실상 정부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런 특위의 권고안에 대해 정부가 하루 만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국민의 혼란이 커졌다. 청와대와 기재부, 특위가 국민 실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민감한 세법 관련 권고안을 발표하기 전에 충분히 의견 조율을 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 ‘불통 위원회’가 초래한 혼선
올 4월 재정특위 출범 이후 기재부는 줄곧 금융과 임대소득 강화를 너무 빨리 추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기재부 세제실장을 통해 특위에 “현재 경제 상황을 볼 때 한 번에 많은 세목을 인상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5월까지만 해도 특위도 이들 세법 개정안을 중장기 과제로 논의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특위가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기 전날인 2일 청와대에 보고한 권고안에는 그동안 논의가 무르익은 종합부동산세 개편안뿐만 아니라 금융소득과 임대소득 과세안이 포함됐다. 특위는 주무 부처인 기재부의 우려를 고려하지 않은 권고안을 불쑥 발표했고, 청와대와 정부는 특위가 권고안을 발표한 당일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특위 권고안은 청와대, 정부와 의견 조율을 거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정부가 뒤늦게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혼란이 가중된 것이다.
소통 부족 논란이 벌어지자 특위는 4일 “우리와 정부의 시각은 다를 수 있으며 결정은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반면 기재부는 애초부터 종부세 개편안만 정부안으로 발표하기로 한 만큼 이번 혼란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 “금융자산 옥죄면 집값 오를 것”
기재부가 특위 권고안에 제동을 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종부세 인상과 금융소득 과세를 동시에 강화하면 겨우 안정세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다. ‘집값 안정’을 주요 경제 정책 목표로 삼는 현 정부로서는 부동산 투기 수요를 최소화하는 게 공평 과세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시급한 과제였던 셈이다.
기재부는 또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해 조세 저항이 일어나면 종부세에 대한 여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 원 초과에서 1000만 원 초과로 낮추는 안을 검토했지만 은퇴 후 이자소득으로 생계를 잇는 계층 등의 반발을 고려해 중장기 과제로 돌린 바 있다.
○ 기재부로 넘어간 공
청와대 관계자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내년에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기재부의 입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종부세 이외의 세법 개정안이 중장기 과제로 넘어갈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다만 일부 시민단체가 특위 권고안에 대해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기재부가 속도조절론을 주장하면서 악역을 자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확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부터 내건 공약인 만큼 결국에는 관철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경기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데다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은 만큼 기재부에 결정권을 넘기고 청와대는 소모적인 정치적 논란에서 발을 빼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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