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자녀나 손자에게 재산을 미리 증여하겠다고 결심한 부자가 크게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자 증세’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자산가들이 서둘러 증여를 통해 세금 부담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6일 이 같은 내용의 ‘2018년 한국 부자 보고서’를 발표했다. 올해 4, 5월 금융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자산가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금융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개인은 27만84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만1700명)보다 15.2% 증가했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646조 원으로 1년 전(552조 원)보다 17.0% 늘었다.
○ “자산 전부 증여” 3배로 급증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부자의 60.5%가 “현재 납부하는 세금이 부담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응답률(49.9%)보다 10.6%포인트나 늘어난 결과로 세금 부담을 느끼는 부자가 훨씬 많아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세금 부담을 피해 자산을 미리 증여하겠다고 밝힌 부자도 급증했다. “자산 전부를 죽기 전에 증여하겠다”고 답한 사람은 16.5%로 지난해(5.6%)의 3배 가까이로 늘었다. 반면 “자산 전부를 죽은 뒤 상속하겠다”는 응답은 8.7%로 전년(11.3%)에 비해 줄었다.
김예구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세금을 줄이기에 적합한 시점을 찾아 재산 일부나 전부를 사전에 증여하려는 자산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최근 초고가 주택 소유자나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종합부동산세를 개편했다. 고가 1주택자나 다주택 소유자, 토지 소유자 등 34만9000명의 세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도 강화돼 24만 명이 740억 원가량의 세금을 더 내게 된다.
특히 이번 설문에서는 자녀뿐만 아니라 손자 손녀에게 직접 상속하거나 증여하겠다는 응답도 23%로 전년(12%)의 2배 수준으로 늘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자산가들은 자녀가 손자 손녀에게 증여할 때 증여세를 부담할 것을 고려해 미리 본인이 손자 손녀에게 증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주식 비중 줄이고 현금, 예금·적금으로
부자들은 최근 1년 새 주식 투자를 대폭 줄였다. 이들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1.8%로 지난해(20.4%)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현금 및 예금·적금 비중은 51.0%로 전년(48.9%)보다 증가했다. 최근 금융시장이 출렁이자 목표 수익률을 낮추고 자산을 현금화한 뒤 투자 시점을 기다리는 자산가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부자들은 여전히 부동산을 유망한 투자처로 봤다. 하지만 유망하다고 응답한 비중은 29.0%로 전년(32.2%)보다 낮아져 부동산 투자 열기가 예년만 못했다. ‘향후 부동산 투자로 높은 수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응답도 72.7%로 지난해(68.7%)보다 늘었다.
앞으로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사모펀드에 투자하겠다는 답변은 38.5%로 지난해보다 22%포인트나 상승했다.
부동산 전망이 상대적으로 시들해지고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하자 새로운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자산가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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