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치료제 ‘Z맵’ 딜레마
에볼라 발병국가들 제공 요청… 美선 “안전 검증 안돼” 난색
WHO 내주 회의서 해법 논의… 美, 에볼라 경보 최고 단계로 격상
에볼라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약효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실험용 치료제 투여를 놓고 의료 윤리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1000명에 가까운 아프리카인이 이미 숨졌고 그 두 배가 되는 환자들이 대책 없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왜 미국인 환자 2명에게만 치료제가 투여됐는지, 치료제가 더 있다면 누구에게 먼저 제공해야 하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켄트 브랜틀리 씨(33) 등 미국인 2명이 최근 Z맵(ZMapp) 주사를 맞고 상태가 호전되자 이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고 7일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톨버트 니엔스와 라이베리아 보건부 차관은 “우리나라에는 ‘치료제가 없다더니 미국인들은 치료를 받느냐’는 비난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측에 Z맵 제공을 요청하고 나섰다.
논란이 거세지자 세계보건기구(WHO)는 6일 “다음주 초 Z맵 등의 투여를 놓고 긴급 윤리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Z맵이 아직 정식으로 생산되지 않고 보관과 이동마저 어렵다는 점이다. Z맵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마치지 않았다. CNN에 따르면 이 약은 냉동 상태로 현지에 보내져 최소 8∼10시간 동안 상온에서 해동해야 한다. 브랜틀리 씨 등 두 미국인은 발병한 지 최대 9일이 지나 주사를 맞았다. 미 보건당국은 치료제 투약을 승인했지만 WHO에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에 대한 사용 규정이 없다.
1976년 에볼라 바이러스를 공동 발견한 페터 피오트 런던 열대위생의학연구소장은 “에볼라가 서구 국가에서 확산됐다면 해당 국가 보건당국은 5개월 동안 기다리지 않고 환자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이 약을 사용할 기회를 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WHO가 실험용 치료제를 사용하기로 결정해도 매우 부족한 약을 남녀노소 에볼라 환자 중 누구에게 먼저 주느냐도 풀어야 할 난제다. 아서 카플란 뉴욕대 교수는 “배급량이 적은 치료제를 나눠줄 국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약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직 WHO 윤리위원인 낸시 카스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죽음 앞에 놓인 환자는 잃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신약을 원하지만 신약 후보물질의 위험성은 환자는 물론이고 외부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최고 전문가들이 사용 허가를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WHO는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긴급위원회를 열어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국제적 위기 상황으로 보고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할지 논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시에라리온을 다녀온 뒤 에볼라 의심 증세를 보이던 남성이 숨지고 스페인도 라이베리아에서 감염된 신부를 데려오면서 중동과 유럽까지 에볼라 공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CDC는 6일 에볼라 바이러스 경보단계를 최상위 단계인 ‘레벨1’로 격상했다. CDC가 경보 단계를 이처럼 격상한 것은 2009년에 발생한 H1N1 인플루엔자(신종인플루엔자A) 확산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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