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현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장
서류가방 크기로 공항 등 현장서 사용… 필터로 바이러스 걸러 나노칩 분석
2011년 말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2013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과 일명 ‘살인진드기 바이러스’로 불리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그리고 올해 에볼라 바이러스까지.
세계가 바이러스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들은 모두 확실한 예방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정봉현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장(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사진)은 “현재로선 감염자를 바로 찾아내 격리시켜 바이러스의 확산을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 필터와 종류 감별 칩 붙은 바이러스 진단 키트
우리나라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신종 인플루엔자 등 바이러스 파동을 겪으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원천봉쇄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호흡기로 전염되는 바이러스의 경우 가장 효율적인 봉쇄 방법은 공기 중 바이러스의 존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진단 키트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을 글로벌프런티어사업단의 하나로 선정하고 키트 개발을 맡겼다.
바이러스 진단 키트는 일차적으로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바이러스를 포착해 걸러내야 한다. 이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장비가 최첨단 필터다. 수 나노미터(nm·10억분의 1m) 크기의 바이러스만 걸러내는 초미세 구멍을 가진 필터를 만들려면 나노 단위를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나노 기술이 필수다.
바이러스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면 종류도 알아내야 한다. 가령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은 병원에서 데스크톱PC 크기의 장비로 역전사-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검사를 따로 해야 한다. 연구단은 이를 손바닥만 한 칩으로 바꿔 필터 바로 옆에 붙일 계획이다. 정 단장은 “필터에서 걸러낸 바이러스를 칩에서 바로 분석해 종류까지 한번에 알아낼 수 있다”며 “서류 가방 크기로 만들어 공항이나 바이러스 발생 현장 등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향후 바이오테러에 이용되는 탄저균이나 최근 문제가 되는 슈퍼박테리아(항생제 다제내성균)를 검출하는 데도 키트를 활용할 계획이다. 정 단장은 “약국에서 판매하는 임신 진단 키트 수준의 정확도를 가진 진단 키트를 만들면 충분히 활용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혈당측정기 만들던 노하우가 토대
연구단이 키트 개발 목표로 잡은 시점은 앞으로 3∼4년 뒤. 정 단장 등 연구진이 그간 키트 개발 노하우를 축적해 놓은 덕분에 기간을 많이 단축했다. 이 중에는 식약처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판매 중인 제품도 있다.
‘베리큐(Veri-Q)’라는 손바닥만 한 혈당측정기는 동네 마트에서도 살 수 있다. 베리큐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확도가 99%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 정 단장은 “혈당측정기의 센서를 로봇으로 정확하게 찍어내는 반도체 공정으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실험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마트에서 제품으로 판매될 때 보람을 느낀다”며 “과학기술이 세상을 하나씩 바꾸는 모습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다는 게 이 연구의 매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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