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 10cm짜리 단열문을 두 차례 통과하니 온도 27도, 습도 70%의 여름 날씨로 맞춘 후덥지근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선반에 놓인 모기장 3개 안에는 지카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흰줄숲모기’ 수천 마리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날아다녔다. 22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질병관리본부 감염병매개체사육동의 모습이다.
○ 공격적인 ‘지카 모기’
감염병매개체사육동은 감염병을 옮기는 곤충을 연구하기 위해 2014년에 지어졌다. 고위험 바이러스를 다룰 때를 대비해 본관에서 100m가량 떨어진 외딴 곳에 단층으로 설계됐다. 사육동에 근무하는 연구원의 신분 확인을 받은 뒤 소독·세탁된 옷과 신발을 착용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전체 면적이 250m² 정도인 사육동에는 사육실이 7개 있고, 그 안에선 살인 진드기로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와 바퀴벌레, 파리 등 다양한 곤충이 사육되고 있었다.
지금 연구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지카의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다. 흰줄숲모기의 경우 전체 국내 모기 중 1.1%에 불과하고 지카가 검출된 사례도 없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만약에 대비해 전국 각지에서 채집해 온 흰줄숲모기를 이곳에서 관찰하며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습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집트숲모기는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 신이현 연구관이 흰줄숲모기를 가둬 둔 모기장 근처로 다가가자 까만 몸통에 하얀 줄무늬가 있는 녀석들이 ‘흡혈 대상’의 냄새를 맡은 듯 앵앵거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꿈틀거리며 물속에서 헤엄치는 흰줄숲모기의 유충은 외계 생명체를 연상시켰다. 바로 옆 ‘빨간집모기’들이 얌전히 그물에 앉아 있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흰줄숲모기는 습성이 사납고 공격적이라 촘촘한 그물을 뚫고 나올 때도 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가 사육실에서 나올 때쯤 오른팔이 가려워 소매를 걷어 보니 모기에 물린 자국이 있었다. 신 연구관은 “바이러스를 주입한 모기가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고, 강력한 에어커튼이 설치돼 있어 모기가 배양실 밖으로 못 나온다”며 안심시켰다.
사육실 밖에 거실처럼 마련된 공동 연구 공간에 들어서니 쥐의 분비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곳 모기들의 주식은 설탕물이지만 번식하기 위해선 동물의 피가 필요하므로 ‘흡혈용’ 쥐도 20여 마리 키운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모기의 월동 습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연구하기 위해 이끼, 나뭇잎 등 다양한 생활 환경도 재현해 뒀다.
○ “이집트숲모기 들여와 연구해야”
연구진은 흰줄숲모기가 깨어나 활동하는 5월 각 지방자치단체가 본격적으로 방역에 돌입하기 때문에 모기가 어떤 살충제에 내성을 갖고 있는지 집중 연구를 벌이고 있다. 같은 살충제를 계속해서 쓰면 모기의 내성이 18년 새 300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교수는 “지카 바이러스뿐 아니라 뎅기열 등 모기가 옮기는 여러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선 살충제 효율성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카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당국의 연구는 걸음마 단계다. 지카 바이러스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면 이집트숲모기를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통관 절차가 까다롭고 수송 중 모기가 탈출할 우려가 있어 아직 장기 계획으로 남아 있다. 모기를 들여오더라도 감염병매개체사육동은 아직 고위험 병원체를 실험할 수 있는 생물안전 등급(BL3)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당장 전파력 실험을 시작할 수 없다.
인력도 문제다. 모기 등 곤충을 연구하는 ‘질병매개곤충과’에는 정규직 5명, 비정규직 12명이 전부다. 정기석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달 취임 직후 “외부 인력을 영입해 ‘모기팀’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예산 문제로 이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사육동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인력을 늘리면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할 수도 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는 24일 첫 한국인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A 씨(43)의 아내 B 씨의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음성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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